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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세종처럼









위 영상을 보고 읽어본 책. 오랜만에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책을 순식간에 읽었다.

세종대왕의 겸손함과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실록 사이사이에 보이는 듯 했다.

시대에 맞지 않는, 놀라울 정도의 합리적이고 인도적인 태도가 놀라웠다. 




 세종의 말하는 방식은 일단 신하들의 말을 수긍하되 곧이어 자신의 말을 주장하는 방식이었다.
왕을 비판하는 말을 할지라도 일단 "네 말이 아름답다" "그 뜻이 좋다" "경의 말이 매우 옳다" 등으로 상대의 의사를 존중해 주었고, 그 다음 자신의 주장을 폈다.
 또한 세종은 자신을 비판하거나 불순종하는 신하들에 대해서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았다. 실록에서 나오는 세종이 화를 내는 장면은 대부분 공적인 일에 대한 문제였다.


 세종이 자신의 뜻을 맘대로 펼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태종의 역할이 컸다. 태종은 왕의 위치를 확고히 다지는 데에도 애썼지만, 한편으로 토목공사 등을 자신의 때에 강행하며 세자 대에는 한줌 흙의 공사도 하지 않게 하여 민심을 얻게 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이 즉위하고 처음 한 말은 "의논하자!" 는 말이었다. 당대 최고의 학자 변계량으로부터 학문적 능력을 인정받았고, 부왕 태종으로부터도 "정치의 큰 줄거리를 안다"고 인정받은 세종은 '인물을 잘 알지 못한다'며 겸손하게 의논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명나라 사신이 와서 차린 연회에서 세종은 태종에게 엎드려 술을 받고 꿇어앉아 술을 올린다. 이를 본 명나라 사신은 그 모습에 극찬을 하고, 태종은 그 말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다.
  "노 전하께서 이미 세상 일을 떨쳐버리셨는데 부탁할 만한 사람을 얻으시고, 세상 밖에서 마음 편히 노니시면서 정신을 수양하시니 과연 지극한 낙이라 하겠습니다. 고금에 흔치 않은 일입니다. 돈이 있어도 자손의 어짊은 사기 어려운 법입니다."
  "사신의 말씀을 듣고 보니 눈물이 흐름을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행여 괴이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참으로 행복합니다."
 후에 태종은 이렇게 기쁨을 표현한다. 
  "내가 나라를 부탁해 맡김에 사람을 잘 얻었으니 산수간에 한가로이 노니기를 이처럼 걱정 없이 하는 자는 천하에 나 한 사람뿐이다. 고금을 통틀어도 나 한 사람뿐일 것이다!"


 세종 시대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있었다. 이것은 인재를 믿고 맡기는 세종 철학의 결과였다.
  "인재를 얻어 맡겼으면 의심하지 말고, 의심이 있으면 맡기지 말아야 한다."
 세종은 자신의 왕위 등극을 반대하던 황희를 믿고 중용했고, 무인 출신 최윤덕을 정승 자리에 앉히는 등 파격적이지만 합리적인 인사 정책을 펼쳤다. 세종 재위 시에 죽은 길재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임금이 먼저 신하를 부르는 것은 삼대 이후 드문 일이니, 너는 마땅히 내가 고려조에 마음을 바친 것처럼 조선의 임금을 섬기도록 하라."
 

 또한 부패한 관리의 자손이라도 현능하다면 관직에 올릴 수 있도록 법을 바꾸고, 뇌물수수나 변경 방어 실패 등에 대한 책임은 엄중히 묻되 그 능력은 보전할 수 있게 하였다. 이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최선을 다한 신하들이 많았다. 
 "사람의 마음은 잃었던 직임을 다시 주면 전에 허물을 면하려고 애쓰기 마련이니 마음을 고치고 생각을 바꾸게 되는 것이다."


 월 5회 가량 열렸던 경연에서는 신하들의 말을 듣는 데에 집중했다. 세종은 서로 반대되는 입장의 신하들의 의견을 침묵을 지키며 골고루 경청한 뒤, 의견이 어느 정도 모아지거나 기울면 힘을 실어 주곤 했다. 신하들을 격려하기 위해 왕이 먹는 최고의 음식들로 점심을 함께 했다.
 아첨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꺼려하면서 항상 정치를 어렵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항상 세종을 따라다니던 사관은 훗날 이렇게 적는다.
 "즉위한 이래 한 번도 게으르지 않았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올바르게 한 임금이었다." 


 세종의 토론식 경영에는 언제나 원칙적인 소수의견을 제시하며 주로 왕의 반대편에 선 이조판서 허조가 있었다. 하지만 세종은 언제나 허조의 입장을 존중하고, 위에서 나온 인재 등용의 대부분을 허조에게 맡겼다. 병중에서도 아들을 보내 나라에 대한 충언을 하고, 이에 세종이 "경의 아름다운 뜻을 모두 알았노라고 하라"고 전함을 받자 허조는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긴다.
 "세종의 은총을 만나 간하면 행하시고, 말하면 들어주시었으니 죽어도 한이 없다."



 이 외에도 훈민정음으로 대표되는 문화 경영, 4군 6진과 대마도 정벌 등의 영토 비전, 인간을 중시하는 법 개정,  천민 노인까지도 초청하여 양로연을 베풀고 남녀 노비 부부에게 출산휴가를 지시하는 등 백성을 감동시키는 정치를 펼쳤다. 책을 모두 읽고 나서, 나는 영상을 본 다음부터 갖고 있던 고민을 다시 하게 되었다.



내가 태어날때부터 왕족의 자리에 있었다면, 

그리고 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형제들끼리 죽고 죽이는 모습들을 보며 자랐다면

과연 왕의 위치에 올랐을 때 나의 안전 이외에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수 있었을까?

특히나 애써 보려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민심까지 돌볼 수 있었을까?



훗날 내가 높은 위치에 서게 된다면, 인정받는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그때도 지금과 같은 '아직 멀었어'라는 생각을 갖고 더욱 노력하려 할까..?



지난 1년, 그동안 읽은 책들에 안주하며 노력을 게을리 한 교만함을 반성하고 있던 때에 좋은 책을 읽은 것 같다
내게 남는 시간들을 더 활용했어야 했다. 책 읽는 시간을 실천하는 시간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읽은 책의 양을 떠나서, 그것에 만족하고 '이제 어느 정도는 알겠어'라는 마음을 갖는 순간 내 성장은 멈췄다.
내가 싫어하던 어른들의 모습, 자신의 틀로만 세상을 평가하던 모습을 내가 어느새 닮아가고 있었다.

2010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이지만, 늦게라도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