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도둑질한 적 있어요"
괜찮아.
"저, 원조교제했어요."
괜찮아.
"저, 친구 왕따시키고 괴롭힌 적 있어요."
괜찮아.
"저, 본드 했어요."
괜찮아.
"저, 폭주족이었어요."
괜찮아.
"저, 죽으려고 손목 그은 적 있어요."
괜찮아.
"저, 공갈한 적 있어요."
괜찮아.
"저, 학교에도 안 가고 집에만 처박혀 있었어요."
괜찮아.
어제까지의 일은 전부 괜찮단다.
"저, 죽어버리고 싶어요."
하지만 얘들아, 그것만은 절대 안 돼.
우선 오늘부터 나랑 같이 생각을 해보자.
이 책 제일 앞부분에 나오는 글이다. 이것만으로 이 책을 모두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잘 나가는 학교의 교사로 근무하다, 친구인 야간학교 교사가 밤거리의 아이들을 무시하는 모습에 화가 나 그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이끌겠다며 야간고등학교로 전근,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위의 마음가짐만으로 밤거리의 아이들을 선도하는 선생님의 이야기다.
이 책을 다시 읽고 미즈타니 오사무에 대해 알아본 뒤, 매일매일 많은 회의감이 들 수 있는 이런 일을 20년 가까이 계속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길거리의 아이들에 대한 말로 친구와 싸우던 밤의 순간적인 오기로는 이렇게 오랫동안은 할 수 없는 일. 정말 2005년에 나온 저 책의 첫 글귀처럼,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그저 다가가겠다는 마음만으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이 책을 봤을 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자신들이 자신을 망치는 길을 선택해 남에게 피해까지 주는 사람들을 왜 감싸안아야 할까? 시간이 흐르며 저들도 나름대로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고, 바른 길을 찾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분간하기 힘든 나이기에 저런 모습들을 보인다고 머리로 이해는 하지만, 사실 지금도 그렇게 공감은 하지 못하고 있다. 무작정 무시하고 피하는 게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해답이 아니라는 생각만 어렴풋이 들 뿐이다.
때문에 나는 많은 세월이 흘러도 미즈타니 오사무와 같은 사람은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와 같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저런 선생님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잘하는 것도 없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별로 자신없던 내가 나와 내 이름을 사랑하게 된 건 고3때 옆 반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항상 말도 많지 않으시고 자기 반을 포함한 많은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대상이었던 그 선생님께서는, 그냥 수업시간에 열심히 하려고 하고 교무실에 올 때마다 인사 잘하는 나를 눈여겨보셨나보다. 졸업식 날, 복도에서 마주쳐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하는 나를 불러 세우고는 이런 말을 해 주셨다.
'너는 내가 지금까지 교사를 하며 본 학생 중에 가장 성실하고 뛰어난 아이야. 네가 학교를 어디로 갈지, 가서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서 무엇을 하든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선생님은 믿는다.'
그냥 졸업식에서 흔히 할 수 있는 인사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진지하게 말씀하셨고, 정말 한번도 이런 적이 없으셨는지 상당히 어색해하셨지만 그래도 한마디 한마디 확신하는 어조로 말씀하셨다. 그 뒤로도 지금까지 그렇게 강한 믿음으로 내게 말하는 사람은 못 봤다. 심지어 예배 때 선포하거나 축도할 때도, 그 선생님만큼 확신에 찬 어조로 말씀하시는 분은 본 적이 없다.
비록 그 순간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갔고 시간도 많이 흘러 선생님께서 정확히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확신에 찬 그 어조와 눈빛, 그리고 손짓은 지금까지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그 이후로 나는 '말의 힘'이라는 것이 엄청나다는 걸 느꼈다. 힘든 순간에도 그 말을 생각하면, 내가 발견하지 못한 나의 무한한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리고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오래오래 남는 한 마디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고, 정말 진심을 담아 말하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내가 고3 시절을 항상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졸업식이라는 고등학교 마지막 페이지에 받은 이 큰 선물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항상 교무실에서 인사할 때마다 조용히 끄덕이며 미소 지으시던 선생님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