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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남자는 인생으로 시를 쓴다




한 홍 목사님의 책.

교회 책장에 오랫동안 들어 있었던 것 같은 책이다.

<순간을 위해 평생을 준비한다>를 읽고 목사님을 알고 나서 흥미가 생겼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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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인물 중 , '다윗'의 리더십에 관해 쓴 책이다.
제목을 보고, 부제로 적힌 '다윗 리더십 이야기'를 보자,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지 바로 감이 왔다. 

그만큼 다윗의 시는 진솔한 언어로 쓰여져 있다. 애써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아도, 삶 가운데서 느끼는대로 쓰는 그 찬양들이 하나하나 모두 작품이 된다.

거의 다 책 내용. 조금씩 편집만 해서 정리해 봤다.


 하나님은 자신이 사명을 내린 사람을 지도자로 만드실 때 반드시 광야에서 일정 기간 그의 영혼을 겸손히 만들고 준비시키시는데, 사울의 경우에는 이런 과정 없이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갑자기 지도자의 위치에 세워졌다. 결국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불순종하게 된다. 제사장 사무엘이 오기 전에 예배를 주도하며, 하나님이 그어 주신 선을 넘은 것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Godliness)이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God-likeness)이 아니다.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후에도 다윗은 가족 중 막내라는 자신의 위치에 성실했다. 싸움터에 나간 형들에게 심부름 가는 것도 열심히 했고, 골리앗을 잡은 후에도 왕의 악사로 자신의 역할을 했다. 그는 그 순간 하나님이 세워 주신 자리에서 주어진 일에 성심껏 최선을 다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젊은이들이 비전이라는 그럴 듯한 명목으로 자신의 교만을 위장한다. 자신은 큰일을 할 사람이기 때문에 작은 일은 못 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아주 보잘것 없는 순간 순간도 하나님의 귀한 사명을 위한 과정이다.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요셉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요셉이 형제들을 알아보고 베냐민을 두고 가라 할 때, 유다가 눈물로 자비를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후 맺어진 유다 자손인 다윗과 베냐민 자손인 요나단의 우정. 둘로 쪼갠 동물을 놓고 가운데를 지나며 맺은 둘의 언약, 언약을 깰 경우 이와 같이 된다는 의미로 맺은 두 남자의 맹세는, 요나단이 죽은이후로도 시대를 넘어서 지켜지게 된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죽은 뒤, 이스라엘은 두 개의 나라로 나뉘어지는데, 북쪽의 이스라엘과 남쪽의 유다이다. 그 때 10개 지파는 함께 북으로 몰려가서 이스라엘 왕국에 가담했는데, 유독 베냐민 지파만은 남쪽에 남아서 유다 지파와 운명을 같이 한다. 아주 특별한 관계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사이에 계속되었다.
 유다와 베냐민의 특별한 관계는, 천 년 후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보다 더한 놀라운 관계로 이어진다. 다윗의 자손으로 유다 지파에서 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요나단의 후손들인 베냐민 지파와 어떤 관계를 가지셨는가? 팔레스타인 밖을 벗어나서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할 세계 선교의 주역으로 선택된 사도, 예수 그리스도 외에 신약에 나오는 가장 위대한 크리스천이요, 선교사요, 신학자요, 목회자로 손꼽히는 사도 바울, 한때는 무서운 열정으로 교회를 핍박했었으나, 다마스커스로 가는 도상에서 에수의 빛을 만나 회심하고 자신의 삶을 복음 전파에 송두리째 헌신한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 그가 바로 베냐민 지파의 후손이었다.
 바울이 그리스도에게 드린 사랑은 마치 그의 베냐민 지파의 조상인 요나단이 다윗과 맺은 영원한 우정, 놀라운 사랑과 같은 것이었다. 요나단은 정말 대단한 실력과 명예, 나이를 가고 있었음에도 소년 다윗에게 임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고, 그와 영원한 언약을 맺으며 생명보다 귀한 우정을 바쳤다. 마찬가지로 바리새인 중 최고의 학벌에, 로마 시민에, 대단한 부를 소유하고 있던 바울이었지만, 이름 없는 나사렛 목수 출신의 예수가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목도한 뒤에는 그에게 철저히 항복하고 영원한 사랑과 헌신을 바쳤다.


 우리 인생 속에는 많은 유혹의 순간들이 있다. 상황이 힘드니까, 힘든 상황을 순식간에 끝낼 만한 돌파구가 보이면 진중히 기도해 보기도 전에 그냥 덜컥 물어 버린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기도 중의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를 내심 바랐던 까닭'이다. 숨어 있던 동굴에 들어와 일을 보던 사울의 둣모습을 확인한 다윗의 마음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했다. 사울 또한 한때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리더십임을 알았기에, 다윗은 사울을 존중했다. 


 나라의 강대함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인구 조사를 명령한 다윗, 인구 조사 결과를 듣는 순간, 다윗은 자신의 명령이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음을 깨닫고 통곡한다. 그 동안 싸워 이긴 전쟁들은 절대로 수적 우세에서 이뤄낸 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간 전쟁이었다. 하지만 주변 강대국을 다 무찌르고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기 위해 저지른 인구 조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예감에 몸을 떨었다. 하나님의 다윗의 진실한 회개 기도를 받으시고 그 죄를 용서하셨지만, 지도자가 지은 죄의 대가는 그 나라가 받아야 할 것임을 알려 주셨다. 하나님은 세 가지 국가적 벌을 제안하셨다.
 1. 온 이스라엘에 삼 년 동안의 기근이 임하는 것.
 2. 다윗이 대적의 칼을 피해 석 달 동안 피해 다니는 것.
 3. 온 이스라엘에 3일 동안 전염병이 퍼지는 것.
모두 고통스러운 형벌이었으나, 마침내 다윗은 세 번째 벌을 선택한다. 이때, 선택의 이유가 중요하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나이다."
3일 동안의 전염병을 선택한 까닭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시는 형벌이기 때문이다. 즉, 사람을 통한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게서 직접 행하시는 벌이라는 사실에서 소망을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매를 맞아도 하나님께 직접 맞겠다는 다윗의 결심에서 우리는 이미 온전히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온 그의 회복된 영성을 읽을 수 있다. 결국 전염병으로 순식간에 7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 넘어졌다. 견디지 못한 다윗은 하나님 앞에 뛰쳐나가 울며 기도했고, 하나님은 죄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백성들을 바라보며 통곡하는 사랑하는 다윗을 보며 마음이 흔들리셨고, 심판은 3일이 되기 전에 멈췄다. 죄 값이 치러져서 멈춘 게 아니라, 하나님이 선하셔서 중단된 심판이었다.
 하나님의 재앙이 멈추는 순간, 하나님은 한 장소를 지정해 주시면서 다윗으로 하여금 그곳에 제단을 쌓게 했다.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이었다. 그곳은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기 위해서 단을 쌓았던 곳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지정한 화해의 장소에 단을 쌓고 제사를 지내고,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셨다. 그리고 다윗은 그곳이 장차 하나님의 성전이 지어져야 할 장소임을 확신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아들 솔로몬을 통해 지어질 성전 공사의 뒷배경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힘들었던 바로 그 절망의 자리, 슬픔의 자리, 실패의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비전이 싹트는 새로운 시작점이 된 것이다.

 생명이 다하기 전, 다윗은 모든 지도자들을 모아 놓고 다음 세대에 이어질 엄청난 프로젝트를 브리핑한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었다. 
 너무나 많은 리더들이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하려 하고, 자신이 사라지면 자신이 이끌고 있던 단체가 휘청거릴 정도로 만들어 놓는다. 리더로서 이처럼 이기적인 행동은 없다. 자신이 사라져도 그 단체가 더욱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나 이후에도 영원히 변치 않는 비전과 목표를 제시해야 하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다음 세대 리더십을 준비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 뜻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다윗이 죽은 후, 하나님은 다윗을 그 이후 이스라엘 모든 왕들이 따라야 할 리더십의 유일한 본보기로 삼으셨다. 솔로몬도"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다."라고 평을 받았고, 이스라엘을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아하스 왕을 설명할 때도 "그가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라 했다. 한편으로, 탁월한 왕들을 칭찬할 때도 다윗을 표준으로 삼았다. 다윗 이후로 100여 년이 지난 뒤 왕위에 오른 아사는 "그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라고 쓰였고, 다윗 후 300년이 지난 뒤 왕이 된 히스기야 또한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평을 받았다. 
 인간적으로만 보더라도, 다윗은 결코 완벽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다윗은 죄를 자각할 때마다 자신의 결점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회개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본받으려는 자세를 평생 잊지 않았다. 그래서 다윗은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날 수 있엇고, 그 때마다 더욱 성숙해졌다. 그 모습을 하나님은 이스라엘 왕들의 기준으로 삼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