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안이 11월 5일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법무부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 긴급 안건으로 ‘위헌 정당 해산 심판 청구의 건’을 상정했고, 이 안건은 국무위원들의 심의ㆍ의결 절차를 거쳐 통과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통진당의 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정부가 정당에 대한 해산심판을 청구하는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라고 합니다.
통진당의 현 상태가 과연 국가안보에 위협을 주는 세력인가의 문제를 잠시 떠나서, 어찌됐든 국민들의 투표로 일정 퍼센트 이상의 지지를 얻은 정당을 정부가 해산하려 하는 움직임이 옳은가의 문제가 첫 번째입니다. 언뜻 보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다음은 각 이해집단들의 반응입니다.
새누리당 :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다. (관련기사)
민주당 : 헌법재판소 판결 기다리겠다. 단 처리 절차 되짚어볼 필요. (관련기사)
통합진보당 : 헌법을 훼손하는 유신독재, 긴급조치 부활 (관련기사)
박원순 서울시장 : 절차에 따른 처리. 헌법재판소가 잘 해결할 것 (관련기사)
생각보다 이에 대한 진보 층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합니다. 물론 통합진보당은 제외하구요.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반응은 오히려 '절차에 따라 잘 진행되는 게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발전한 모습'이라고 합니다. 사실 박원순 시장의 정치적 위치는 민주당과 새누리당 사이보다는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사이에 있거든요. 변호사 출신인 분이 이렇게 반응하시는 걸 보니 법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서 찾아보았습니다.
Q. 정부의 정당에 대한 해산심판 청구는 합법한 절차인가?
대한민국 헌법 제 1장입니다.
제 8조 ④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 재판소에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
놀랍게도, 헌법에 정당의 해산에 대한 제소가 가능하다고 나와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의 뜻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정당이 해산 가능하다는 게 놀랍긴 하지만, 뭐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만든 법이니 전문가가 아닌 저로서는 특별한 이의를 제기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진작 헌법재판소에 올랐겠죠? 일단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Q. 헌법재판소란?
이제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판결을 내리느냐의 문제가 남았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대법원보다 상위에 있는 법무부 최종기관으로, 9명의 헌법재판관으로 구성됩니다. 헌법재판소로 올라온 사안들에 대해 9명의 재판관이 이번 청구에 대한 심판을 하게 됩니다. 법률의 위헌 여부를 가르는 위헌법률심사, 헌법소원, 탄핵심판 등은 6명 이상의 찬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 9명 중 6명이 통합진보당의 해산에 찬성하면 통합진보당은 해산되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필요로 했던 굵직한 사건들 중 최근 유명한 건, 탄핵결의 / 수도이전 문제가 있었습니다.
한 건은 찬성 후 국민들의 투표로 이어졌고, 한 건은 위헌으로 판결이 났죠.
이번 건의 경우, 정부에서 청구를 하는 것 자체의 절차는 문제가 없지만, 실제적으로 헌법재판소에서 정당을 해산할 만큼의 사안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사법부에서 가장 똑똑한 분들이 법적으로 어떻게 되는지를 판결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여론과 수많은 쟁점들을 놓고 그 영향력을 고려한 결과를 발표하는 것일 테니까요. 법적으로만 따지면 만장일치가 되어야 하고, 굳이 9명이 필요가 없겠죠?
Q. 통합진보당이 해산될 경우, 이득은?
정부에서 해산심판 청구안을 통과시켰으니 정부 입장에서는 유리할 것 같고, 그렇다면 새누리당 또한 유리할 것 같습니다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각 정당을 지지하는 세력을 살펴보겠습니다.
화살표는 그냥 3등분, 2등분으로 보시면 됩니다. 각 층이 어느 정도 비율을 차지하는지 저는 모르니...
물론 정치에는 훨씬 더 복잡한 이해관계들이 있고, 위 내용 중에서도 어느 한 쪽이라기보다는 종합적으로 가지고 계신 분이 많겠지만, 편의상 이렇게 나누었습니다.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두 정당인 만큼 진보층 지지자와 보수층 지지자는 각각의 지분을 차지할 겁니다.
반민주당 : 그냥 민주당만 아니면 되는 분들입니다. 과거에 민주당을 믿었다가 분통이 터진 그런(...)
반통진당 : 다른 건 중요하지 않고 "일단 우리의 주적은 북한!!"을 수호하는 분들입니다.
반새누리 : 반민주당과 같은 위치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정권이 바뀌어야 부패가 없어진다는 입장입니다.
?? : 통합진보당은 노코멘트.
아무튼 이 위치에서, 현재 새누리당이 밀고 있는 프레임은 이렇습니다.
위에서 나온 지지세력 중에, 보수층은 어떤 상황이 되든 새누리당을 지지할 겁니다. 소위 말하는 콘크리트층이죠.
문제는 나머지 층인데, 새누리당이 표심을 계속해서 확보하려면 위와 같은 프레임을 통해 민주당을 압박해야 합니다.
그런데 통합진보당이 없어지면??
새누리당은 통진당에 반대하는, 국가안보를 최우선시하는 지지세력을 잃습니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을 싫어하던 지지세력의 일부를 잃습니다.
통합진보당을 지지하던 유권자가 새누리당으로 갈 확률은 희박합니다.
결국, 통합진보당이 없어지면 새누리당이 손해인 상황입니다.
게다가, 정당 해산 이후에도 통합진보당 세력들은 다시 새로운 당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정부와 새누리당이 밑지는 장사를 하려고 한 게 아닌 이상은, 이번 건은 '견제' 수준으로 볼 수 있겠죠.
이런 면에서 보면 민주당의 대처도 이해가 됩니다.
통진당을 대놓고 감쌀 경우, 새누리당은 당연히 위와 같은 프레임을 덮어씌우게 됩니다.
그렇다고 아예 모른척 할 경우, 진보세력으로서 할 일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의 지지층을 잃을 수 있는 여러모로 골치아픈 상황입니다. 그래서 정당의 대표적인 입장은 '유감이다, 지켜보겠다.' 선에서 끝났습니다. 민주당 선에서는 어떻게 점수를 따기보다는 그저 선방하는 게 최선의 결과인 셈이네요.
이후 / 다른 이야기들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이 이 사안에 대해서 비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네요.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104838
그 외에도 진중권 동양대 교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준표 경남지사 등의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이번 견제(자꾸 겐세이라고 쓰고 싶은 충동이...)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한 마디가 있습니다.
좀... 이 아니라 수위가 너무 센 감이 있지만;; (물론 국정원 조작 사건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에는 내란 실현이라고 말해도 할 말 없긴 합니다.)
일단 국정원 댓글 여론조작 사건에 대해서는 기다려보자는 정부에서 그 타이밍에 견제를 놓는 건 좀 그러네요.
물론 이 트윗도 정확히 말하면 통진당에 대한 재판이라기보다는 이석기 개인에 대한 재판인데 한 프레임으로 엮는 것, 내란이라는 단어에 대해 확대해서 사용한 것 등의 문제가 있으니, 보시는 분들이 알아서 필터링하시기 바랍니다.
과거 이승만 정권 시절의 진보당 해산과 동급으로 놓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그 때는 정부에서 직권으로 해산을 했고, 지금은 헌법재판소라는 사법기관을 통해 해산청구를 하는 것이니 그 때보다야 발전된 모습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후의 절차는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정부의 통진당 해산 청구가 헌재에 접수되면, 헌재는 그 사실을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통지하고 청구서 등본은 통진당에 송달한다. 헌재는 이때 최종 선고 이전이라도 직권 또는 정부의 신청에 의해 통진당의 활동을 정지하는 가처분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헌재는 심판을 접수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최종 선고를 해야 한다. (관련기사)
중대한 사안인만큼 180일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헌재에서 결정하는 순간 통진당은 안녕~
결정 전에도 정당 활동에 대해서는 엄청난 제약이 걸리게 될 것 같습니다.
혹시나 아직도 "그래서 통진당이 없어지는거야 마는거야??"라고 물으신다면...
모릅니다. 하지만 없어지지 않는 것이 새누리당에 이득이고, 없애 봐야 비슷한 조직이 다시 생겨서 같은 역할을 계속 해 줄 테니, 그 중에서 조금 더 유리한 쪽으로 움직이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