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공이 정치에 대해서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식량을 풍족하게 하는 것, 군비를 넉넉히 하는 것, 백성들이 믿도록 하는 것이다."
자공이 말하였다.
"어쩔 수 없어서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군대를 버린다."
"어쩔 수 없어서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식량을 버린다. 예로부터 모두에게 죽음은 있는 것이지만, 백성들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는 존립하지 못한다."
「논어」
중산층이 불안해하고 분노하고 그 결과 좌절에 빠지면 그동안 우리 국민들이 땀과 열망으로 발전시킨 대한민국의 시장경제 또한 내일을 기약하기 힘들다.
중산층의 분괴는 포퓰리즘을 낳고, 이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국민을 분열시키며, 다시 시장경제의 발전에 필수적인 경제성장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사회, 사회경제적 신분 상승이 어려워지는 사회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저녁이 있는 삶」p.166
복지사회는 시장경제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민주주의, 시장경제와 함께 복지사회는 우리가 세우고자 하는 새로운 사회가 지향하는 핵심 가치이다.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에는 자식만 믿고 사는 부모도 없고, 부모 힘만 믿고 사는 자식도 없다. 복지는 정부가 제공하는, 아니 우리 국민이 함께 키우는 효자이며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도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 주는 '키다리 아저씨'와 같은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p.174
일부 언론이 '복지 공포증'을 조장하기 위해 일본과 함께 단골 메뉴로 삼는 레퍼토리가 바로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다. 그 나라들이 복지 과잉으로 재정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 여력을 뛰어넘는 과도한 복지나 경직적인 연금제도 아래 고령화에 따른 지출이 늘어나 재정상황을 악화시킨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이 재정위기를 겪은 것은 2000년대에 자산시장에서 거품을 일으켰던 자금들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금융권 부실이 커진 데다가 만연한 탈세 등으로 과세 투명성과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지 못했던 탓이 더 크다. 단순히 복지 과잉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남유럽 국가들보다 복지 수준이 훨씬 높은 이른바 진짜 복지국가들의 재정은 매우 탄탄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금방 알 수 있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국가채무가 40~50% 정도에 불과하며 오히려 국가채무가 줄어드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또한 막대한 순채무를 기록한 남유럽 국가들과 달리이들 국가들은 오히려 순채권을 기록하고 있을 정도다.
이를 보면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은 오히려 재정 건전성 측면에서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국가들이 철저한 조세 투명성과 형평성을 바탕으로 충분한 세수를 확보하고 정치권과 노사정 간의 폭넓은 사회정치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재정을 지출하는 등 재정 건전성 확보를 전제조건으로 한 사회복지 정책을 확대해온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남유럽 국가들은 부패가 만연하고 지하경제 규모가 커서 세수 구조가 취약한 가운데 부동산 버블 붕괴로 금융위기까지 발생해 큰 타격을 입은 것이 재정위기의 근본 원인이 됐다.
따라서 복지 수준이 매우 열악한 우리 현실은 도외시한 채 '복지 포퓰리즘' 운운하며 오히려 OECD국가 평균의 2배 이상이나 되는 토건 예산에는 입을 다무는 행태야말로 재정 건전성을 더 위협한다고 볼 수 있다. 복지 수준이 열악한 데다 저출산 고령화 충격이 빠르게 진행되는 나라는 전략적이고 체계적으로 복지 인프라를 확충해야 차후에 복지 지출 수요가 급증하는 사태를 줄일 수 있다. 의료복지만 해도 노년 세대의 건강 악화를 방치한 뒤 치료 비용을 늘리기보다는 건강 악화를 예방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훨씬 더 저렴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선대인,「두 명만 모여도 꼭 나오는 경제 질문」p.176
자금부족으로 인한 기업의 부도와 달리, 국가의 부도는 부도선언시 의무를 탕감할 수 있는 국가의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다.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가 바뀜에 따라, 집권자는 이전 지도자의 채무를 지불해야 할 의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번엔 다르다」
뉴딜정책은 보통 정부가 댐 건설 같은 대규모 공공사업을 벌여 고용을 인위적으로 창출해 경제를 되살리는 정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뉴딜정책의 핵심은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광범위한 경제제도 개선과 사회복지의 제공이다. 세율과 법인세, 사회보장제도, 의료보험의 도입,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 인정 등의 정책이 이때 대부분 자리를 잡는다. 실제로 뉴딜정책을 거치고 나서, 미국 경제의 불평등은 크게 줄어든다. 계층 간 차이가 줄어들어, 소득분포로 보면 미국 사회의 최상층과 최하층이 줄고 중산층 중심으로 압착된 모양을 띤다는 뜻이다.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p.108
인건비가 높은 경제에서는 노동의 질적 부가가치가 매우 높고 일자리도 풍부하며 임금도 높다. 이런 나라에서 노동자는 부동산 투기를 통해 한탕을 노리기보다는 자신의 직무 역량을 높이는 등 자기계발에 치중한다. 자기계발로 높은 임금을 받는 것이 가계경제를 개선하는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 가계는 높은 소득으로 저축과 소비를 하게 되고 결국 경제 전체가 계속 활발해진다.
과거 일본이나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도 부동산 투기 거품이 심각했다. 하지만 이들 선진국은 인건비가 매우 비쌌다. 가장 대표적인 지표로 이들 나라에선 국민소득 대비 최저임금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그래서 이들 나라에서는 식당 알바로 일하거나 청소부로 일해도 일정한 생활이 가능하다. 이렇게 개인이 건강한 경제여야만 전반적인 가계와 살림살이도 윤택해지고, 시간이 자니도 지속 가능한 경제가 된다. 부동산 거품이 꺼진다고 개인이 몰락하는 현상은 없어질 것이다.
선대인경제연구소가 토건과 부동산을 상징하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사람에 투자하자고 주장하는 데는 이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 이는 지식정보화 시대, 창의경제 시대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식을 생산하고 정보를 가공하고 창의성을 발현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바로 사람이다. 사람에 투자하지 않고는 이 나라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사람에 투자해야 사람값이 올라가고 우리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소득이 증가한다. 그래야 내수가 활성화되고 경제가 건강해지고 지속 가능해진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주식 투자와 부동산 투기 열풍이 몰아치면서 우리 경제는 사람을 중심으로 한 생산 경제에서 돈이 돈을 낳는 투기적인 자산 경제로 급속하게 바뀌었다. 특히 부동산 가격이 뛰면서 전반적인 고비용 구조가 형성됐고 제품과 서비스 가격은 계속 올랐다. 이는 지속적인 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자리가 없어서 소득은 늘지 않는데 물가까지 오르니 경기 사이클과 상관없이 서민 경제는 늘 만성 불황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아무리 해도 오를 대로 오른 부동산 가격을 떠받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렇게 부동산시장의 침체기가 왔는데도 정부와 상당수의 언론은 여전히 부동산시장을 살려야 경기가 좋아진다는 인식과 처방을 내놓고 있다. 이처럼 부동산 가격을 억지로 떠받치면 떠받칠수록 가계부채가 늘어나고 내수가 침체되는 등 나라 전체의 기회비용은 막대하게 커진다. 물론 부동산 거품이 꺼진 때는 충격이 따르지만 그것은 이미 부동산 가격이 오를 때 이미 생겨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일정한 충격이 있더라도 별 효과도 없이 거짓 희망과 혼란만 부채질하는 땜질식 부양책은 중단하는 게 맞다.
대신 부동산 거품이 빠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줄이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 특히 과도한 빚을 진 가계들에게 계속 버티라고 하기보다는 대대적인 공공 채무상담 등을 통해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적극 유도해야 한다. 길게 보면 이것이 우리 경제에 돌아올 충격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장기적으로는 사람값을 올려서 일자리와 소득이 늘어나는 건전한 경제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선대인, 「두 명만 모여도 꼭 나오는 경제 질문」p.74
비교적 금융시장이 공개되어 있고, 역사적으로 빠르게 성장한 아시아 국가들은 초기의 경제 위기를 생각보다 잘 견뎌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 발생한 2000년대 초반의 불황 위기에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시아 경제는 수출을 바탕으로 성장하며, 수출 품목 대부분은 제조업 생산품이다. 이들 제조업 생산품은 기초생활 필수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 탄력성을 갖는다.
「이번엔 다르다」
소련의 아이들이 스푸트니크 호를 발사했는가? 미국의 아이들이 미국의 로켓을 발사대에서 고장나게 만들었는가? 그 당시의 우주전쟁은 2차 세계대전의 뒤이어 각각 독일과 헝가리를 계승한 과학자들 간의 전쟁이었다. 게다가 소련은 국내총생산의 훨씬 많은 몫을 로켓공학과 군대에 쏟아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널리 끝없이 보도되었던 것은 소련의 아이들이 미국의 또래보다 두 배나 많은 수학과 과학 숙제를 해왔다는 점이었다. 이는 어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불안을 아이들에게 투사하는지 생생하고도 정신이 번쩍 드는 사례를 제공한다.
「나는 공짜로 공부한다」p.134
제 18대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진보의 거듭되는 패배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것은 선의 패배나 악의 승리가 아니다. 진화적으로 익숙한 것이 새로운 것을 이긴 수많은 사건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었지만 그는 전두환처럼 할 수 없었다. 1992년 보수진영으로 투항한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었지만 그는 전임자보다 더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정치를 했다. … 2012년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지만 그의 정책 공약은 5년 전 낙선했던 진보진영 대통령 후보의 공약보다 더 진보적이었다. 진보 세력은 선거에 졌을 뿐 역사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옳은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니 문재인 대통령을 보고 싶었던 시민들이 '멘붕'에는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살 것인가」p.259
엘시는 잠깐 아무도 없는 곳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흔히들 영주는 그 영민들의 복리를 증진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고 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하지만 영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지도 못한다면 복리의 증진은 광언이 되고 말 겁니다. 생명과 재산의 보호는 치도에 있어 근본 중의 근본입니다. 등기부 위조는 그 기본적인 것을 파괴하는 범죄입니다."
엘시는 그대로 말을 멈추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엘시는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말을 덧붙였다.
"붓으로 이루어진 범죄라 하여 가볍게 여길 수는 없습니다. 붓이 칼보다 강하다고 말하는 문필가는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붓으로 이루어진 범죄가 칼로 이루어진 범죄보다 더 큰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면 억울해 합니다. 바르지 못한 일입니다. 붓이 정녕 칼보다 강하다면, 그 책임 또한 더 무거워야 합니다. 등기부 위조는 붓으로 이루어지는 반역이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나는 창검으로 이루어지는 반역에 비해 더 큰 처벌을 내리지는 못할 망정 최소한 같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붓에 보내는 칼의 경의로 생각할 것입니다."
제국군의 장수들은 약간 질린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틸러는 칼리도의 소영주들이 엘시 본인 만큼 엘시의 귀향을 달가워하기는 힘들겠다는 심술궂은 생각을 하며 정우를 바라보았다. 정우는 긴장이 풀린 듯한 모습으로 바짓자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뭔가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는 것처럼 진지했다. 정우는 그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말했다.
"대장군님. 병사들을 좀 빌려주시겠어요?"
엘시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입니까?"
정우는 엘시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갑자기 정우는 몸을 뒤로 끌어당겼다. 규리하 변경백의 보좌에 똑바로 앉은 정우는 두 손으로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틸러는 고개를 돌리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했다. 틸러는 대전의 벽에 있는 케나린 규리하의 벽화를 훔쳐보고는 다시 정우를 바라보았다.
흘러내린 귀밑 머리를 귀 뒤로 쓸어넘긴 정우는 파노를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
"영감님. 머지 않아 영감님은 손자를 볼 수 있을 거예요. 그 아이가 커서 이야기를 조를 나이가 되거든 말해주세요. 나랏님이 할아버지의 부탁을 받아 아스캄에 와서 나쁜 남작을 물리쳤던 이야기를."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파노 긴시테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 순간 그가 대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두번째로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이영도, 「피를 마시는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