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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영상에서 마지막 3분가량의 내용입니다.
해석본 출처 : 키다리코난 블로그(http://notadetectiveconan.blogspot.kr/2014/04/blog-post_5399.html)
Eleven years ago I gave an address to a graduating class at Harvard. I have not spoken at a graduation since because I thought I had nothing left to say. But then 2010 came. And now I'm here, three thousand miles from my home, because I learned a hard but profound lesson last year and I'd like to share it with you. In 2000, I told graduates "Don't be afraid to fail." Well now I'm here to tell you that, though you should not fear failure, you should do your very best to avoid it. Nietzsche famously said "Whatever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But what he failed to stress is that it almost kills you. Disappointment stings and, for driven, successful people like yourselves it is disorienting. What Nietzsche should have said is "Whatever doesn't kill you, makes you watch a lot of Cartoon Network and drink mid-price Chardonnay at 11 in the morning."
11년 전, 저는 하버드 졸업반 앞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졸업연설을 하지 않았는데, 그건 제가 딱히 더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10년이 왔고, 제가 이렇게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 집으로부터 3천마일이 떨어진 곳에. 왜냐하면, 저는 힘들었지만 심오한 교훈을 작년에 얻었고, 그걸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2천년에, 저는 졸업생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여러분께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걸 피하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는 겁니다. 니체가 말하기를 "뭐든 너를 죽이지 않는 것(역경)은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고 말했죠. 그러나 그가 강조하는데 실패했던 것은, 그건 거의 당신을 죽여버립니다. 좌절은 쓰라립니다. 그리고 의욕있고, 여러분과 같이 성공적인 사람들에게는 방향감을 상실케 합니다. 니체가 정말 말했어야 하는 건 이거야, "뭐든 너를 죽이지 않는 것은, 무진장 많은 만화영화를 보게 하고 중저가의 샤르도네를 오전 11시에 마시게 한다."
Now, by definition, Commencement speakers at an Ivy League college are considered successful. But a little over a year ago, I experienced a profound and very public disappointment. I did not get what I wanted, and I left a system that had nurtured and helped define me for the better part of 17 years. I went from being in the center of the grid to not only off the grid, but underneath the coffee table that the grid sits on, lost in the shag carpeting that is underneath the coffee table supporting the grid. It was the making of a career disaster, and a terrible analogy.
정의에 따라, 아이비리그대학의 졸업연사는 성공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몇 년 전에, 저는 누구나 아는 깊은 실패를 맛봤습니다. 제가 원한 걸 얻진 못했고, 저는 저를 기르고 저를 정의하도록 도와 좀 더 나은 17년이 될 수 있도록 했던 체계를 떠났습니다. 저는 판의 중심에서 멀어졌을 뿐만 아니라, 판에서 벗어났고, 판을 받치는 커피 테이블로 떨어져, 길을 잃었고 판을 받치는 커피 테이블 아래의 모피 카펫에 떨어졌습니다. 그 선택은 커리어의 재앙이 시작되게 했고, 끔찍한 유추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But then something spectacular happened. Fogbound, with no compass, and adrift, I started trying things. I grew a strange, cinnamon beard. I dove into the world of social media. I started tweeting my comedy. I threw together a national tour. I played the guitar. I did stand-up, wore a skin-tight blue leather suit, recorded an album, made a documentary, and frightened my friends and family. Ultimately, I abandoned all preconceived perceptions of my career path and stature and took a job on basic cable with a network most famous for showing reruns, along with sitcoms created by a tall, black man who dresses like an old, black woman. I did a lot of silly, unconventional, spontaneous and seemingly irrational things and guess what: with the exception of the blue leather suit, it was the most satisfying and fascinating year of my professional life. To this day I still don't understand exactly what happened, but I have never had more fun, been more challenged—and this is important—had more conviction about what I was doing.
그러나 뭔가 굉장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안개에 눈이 가리고 나침반도 없이 표류하던 제가, 뭔가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괴상한 계피수염을 길렀고, 소셜미디어의 세계에 저를 던져넣었죠. 제 코미디를 트위팅하기 시작했고, 다같이 전국 투어를 하게 됐습니다. 제가 기타를 연주하고, 꽉 끼는 파란 가죽 의상을 입고 스탠드업 코미디를 했고, 앨범을 녹음했으며, 다큐멘터리를 찍었고, 제 친구와 가족들을 놀래켰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저는 제 커리어로 예상되는 모든 인식들을 치워 버렸고, 재방송이 큰 가장 유명한 기본 케이블 방송에 직업을 얻었습니다. 멀대같이 큰 흑형이 엄마옷같은걸 입는 그런 시트콤같은 재방송이었죠. 저는 굉장히 우습고, 관습적이지 않으며, 즉흥적인데다 때론 비이성적인 수많은 것들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땠을까요? 파란 가죽 의상은 예외로 치고, 이건 제 전문적 삶으로서 가장 만족스럽고 환상적인 해였습니다. 지금까지도, 사실 저는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보다 더 즐거웠고, 더 도전적이었고, -이게 진짜 중요한데- 이보다 더 내가 뭘 하는지에 대한 신념을 가졌던 적이 없습니다.
*솔까말, 처음 이 연설 듣다가 토크쇼에서 케이블 밀린 게 얼마나 뭐 대단한 일인가 감이 안 왔는데, 이 문단에서 좀 느낌이 왔다. 말하자면 유재석이 공중파 다 짤리고 트위터하다 케이블로 시작한거지.
How could this be true? Well, it's simple: There are few things more liberating in this life than having your worst fear realized. I went to college with many people who prided themselves on knowing exactly who they were and exactly where they were going. At Harvard, five different guys in my class told me that they would one day b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Four of them were later killed in motel shoot-outs. The other one briefly hosted Blues Clues, before dying senselessly in yet another motel shoot-out. Your path at 22 will not necessarily be your path at 32 or 42. One's dream is constantly evolving, rising and falling, changing course. This happens in every job, but because I have worked in comedy for twenty-five years, I can probably speak best about my own profession.
이게 어떻게 사실일 수 있을까요? 뭐 그건 간단합니다. 세상에는 최악의 공포를 마주하는 것보다 더 자유롭게 하는 몇 가지 것들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에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가 정확히 누구이고,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 아는 것에 굉장히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하버드에서는, 수업을 같이 듣던 다섯 놈의 다른 놈들이 언젠가는 지들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떠들어댔습니다. 네 명은 모텔에서 스스로 머리에 총알을 박았고, 나머지 놈은 잠깐 BLUE CLUES 쇼에 나왔는데, 그게 모텔에서 또 머리에 총알을 박기 전이었습니다. 22살때 여러분의 길은 32살과 42살과 같은 필요가 없습니다. 어느 누군가의 꿈은 끊임없이 진화합니다. 오르고 내렸다 방향을 바꾸기도 합니다. 이건 모든 직업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제가 코메디에서 25년간 일했기에, 제가 아마도 이 분야에 대해서는 가장 잘 말할 수 있을 것 같군요.
Way back in the 1940s there was a very, very funny man named Jack Benny. He was a giant star, easily one of the greatest comedians of his generation. And a much younger man named Johnny Carson wanted very much to be Jack Benny. In some ways he was, but in many ways he wasn't. He emulated Jack Benny, but his own quirks and mannerisms, along with a changing medium, pulled him in a different direction. And yet his failure to completely become his hero made him the funniest person of his generation. David Letterman wanted to be Johnny Carson, and was not, and as a result my generation of comedians wanted to be David Letterman. And none of us are. My peers and I have all missed that mark in a thousand different ways. But the point is this : It is our failure to become our perceived ideal that ultimately defines us and makes us unique. It's not easy, but if you accept your misfortune and handle it right, your perceived failure can become a catalyst for profound re-invention.
1940년으로 돌아가보죠, 그 때는 정말, 아주, 체고 웃기신 분이 있었는데, 잭 배니였습니다. 그는 정말 엄청난 스타였고, 간단히 말해 그 세대에서 가장 위대한 코미디언이었죠. 그리고 그보다 더 어린 조니 카슨은 굉장히 잭 배니처럼 되고 싶어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닮았지만, 수많은 부분에서 그와 달랐습니다. 그는 잭 배니를 따라했는데, 그 스스로의 유별난 점과 특유의 형식으로, 여론을 뒤흔들어놓았고, 그것은 그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습니다. 그의 우상과 완전히 같게 되는데는 실패했지만, 그는 그의 세대에서 가장 재밌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데이비드 레터맨은 조니 카슨이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죠. 그리고 그 결과로, 제 세대에서는 코미디언들은 데이비드 레터맨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누구도 그렇지 못하죠. 제 또래들과 저는 그 표식을 수천가지 방법으로 지나쳐 왔어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겁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를 정의하고 우리를 고유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가진 이상에 대한 실패라는 겁니다. 이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불운을 받아들이고, 올바르게 처리한다면, 당신의 인식된 실패는 심오한 재탄생의 촉매가 되는 겁니다.
So, at the age of 47, after 25 years of obsessively pursuing my dream, that dream changed. For decades, in show business, the ultimate goal of every comedian was to host The Tonight Show. It was the Holy Grail, and like many people I thought that achieving that goal would define me as successful. But that is not true. No specific job or career goal defines me, and it should not define you. In 2000—in 2000—I told graduates to not be afraid to fail, and I still believe that. But today I tell you that whether you fear it or not, disappointment will come. The beauty is that through disappointment you can gain clarity, and with clarity comes conviction and true originality.
그래서, 47세의 나이로, 25년간 강박적으로 추구했던 제 꿈은, 그 꿈은 바뀌었습니다. 수십년간, 쇼 비즈니스에서 모든 코미디언들의 궁극적인 꿈은 The Tonight Show의 호스트였습니다. 이건 성배와 같았죠.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제가 그 목표를 이루는 게 성공을 정의하는 거라 했죠.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특별한 직업이나, 커리어의 목표가 저를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건 당신을 정의해서도 안 됩니다. 2000년, 2000년에, 저는 졸업생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여러분이 그걸 두려워하든 그렇지 않든, 좌절은 여러분께 닥칠 것이며, 그 아름다움은 좌절을 통해 여러분은 명료함을 얻을 수 있고, 그리고 명료함으로 신념과 명확한 고유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겁니다.
Many of you here today are getting your diploma at this Ivy League school because you have committed yourself to a dream and worked hard to achieve it. And there is no greater cliché in a commencement address than "follow your dream." Well I am here to tell you that whatever you think your dream is now, it will probably change. And that's okay. Four years ago, many of you had a specific vision of what your college experience was going to be and who you were going to become. And I bet, today, most of you would admit that your time here was very different from what you imagined. Your roommates changed, your major changed, for some of you your sexual orientation changed. I bet some of you have changed your sexual orientation since I began this speech. I know I have. But through the good and especially the bad, the person you are now is someone you could never have conjured in the fall of 2007.
여기에 계신 많은 분들이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졸업장을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스스로에게 헌신하여 꿈을 이루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꿈을 따르라"는 클리셰보다 더 위대한 졸업연사가 없습니다. 저는 여기 이 자리에 서서 여러분께 여러분이 지금 어떤 꿈을 가지고 있던, 그 꿈은 아마도 바뀔 거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건 괜찮습니다. 4년 전에, 여러분 중 대부분은 대학생활이 어찌 될지,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셨을 겁니다. 그리고 장담컨대, 오늘, 여러분 중 다수는 여기서 보낸 시간이 상상하셨던 것과 꽤나 달랐다고 인정하실 겁니다. 몇몇은 성적 성향이 바뀌었구요. 장담컨대 몇몇은 연설이 시작하자 바뀌었을겁니다. 내가 한 매력 하잖수. 그러나 모든 좋은 것들과 특별히 나쁜 것들을 통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07년 가을에 여러분이 상상할수조차 없던 사람이 되었습니다.
I have told you many things today, most of it foolish but some of it true. I'd like to end my address by breaking a taboo and quoting myself from 17 months ago. At the end of my final program with NBC, just before signing off, I said "Work hard, be kind, and amazing things will happen." Today, receiving this honor and speaking to the Dartmouth Class of 2011 from behind a tree-trunk, I have never believed that more.
저는 오늘 참 많은 것들을 말했습니다. 대부분은 멍청한 이야기들이었지만 몇몇은 진실입니다. 저는 제 연설을 금기를 깨고, 17개월 전에 제가 한 이야기를 스스로 인용하는걸로 마무리짓고 싶습니다. NBC의 마지막 방송에서, 마지막 순간에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친절히 대해라. 굉장한 것들이 일어날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영예를 받고 2011 다트머스 졸업반 여러분들에게 나무통 뒤에서 연설하게 된 오늘, 오늘보다 더 그 말을 믿어본 적이 없습니다.
Thank you very much, and congratulations.
감사합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