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알레프
One Star
2011. 12. 24. 17:05

파울로 코엘료의 최신작.
그래서 이번 작품도 그냥 '파울로 코엘료라는 유명한 사람 책이 또 한 권 나왔구나'했는데..
작품 배경이 무려 '시베리아 횡단 열차'!!!
내가 대학 새내기 무렵 열렬히 가고자 했던 그 여행을 배경으로 했다고,
예카테린부르크, 이르쿠츠크, 바이칼 호수 등이 소설에 줄줄이 나온다고
여행 계획부터 관련 다큐맨터리까지 빠짐없이 보며 준비하던 그 때를 떠올리게 했다.
게다가 여주인공은 바이올린 연주자!!!
1학년 겨울엔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이 꿈이었다면, 3학년 겨울의 꿈은 바이올린 연주였다.
마찬가지로 연습용 바이올린도 사고 교습도 받고, 다음 휴가 때 가져와서 연습하려던 내 꿈.
내가 환호성을 지를 만한 두 가지 주제가 모두 들어있는 책! 그래서 이 소설에 더 빠질 수 있었나 보다.
알레프란 히브리어와 아랍어, 아람어의 첫 글자다. 영어로 치면 A.
성경에서 '알파와 오메가'를 이야기할 때 그 알파가 바로 알레프다.
다른 의미로는, 알레프라는 제목의 고전 소설에서 나오는 '모든 시간과 공간이 들어 있는 구슬'을 말한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과거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어떤 장소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이 담겨 있기에, 이 장소에 가면 편안함과 동시에 울고 싶어지는 기분을 느낀다.
주인공(작가 자신으로 나온다.)과 힐랄(여주인공)은 같은 알레프에서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고, 열차를 따라 여행하며 두 사람의 알레프에서 과거의 기억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책을 다 읽은 지금, 갑자기 연금술사를 다 읽고 난 뒤의 기분이 떠올랐다. '이게 소설이야 현실이야?'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고, 책 소개에는 대부분 '환생'을 주제로 이 소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작가가 말하고 싶은 건 '시간, 순간'인 것 같다. 시간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과거의 나는 그저 과거가 아니다. 현재의 내 모습은 과거의 내 모습이 축적되어 온 결과고, 그 때문에 나의 현재는 또한 모든 나의 과거와 같다. 또한 그렇기에 과거 한 부분의 내 모습, 내가 부정해오거나 잊어버린 내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나 또한 온전하지 않다.
소설에서는 이 '과거의 나'를 환생이라는 주제로 풀어냈지만, 나는 이 부분이 우리 삶의 지난 날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전생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통해 지난 잘못을 직시하고 또한 용서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소설에서도 잠깐 언급하듯,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의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 과거에 사랑했고, 과거에 울고 웃었던 일은 현재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럼 왜 과거를 돌아보아야 할까? 그것은 잘못됐던 과거를 바꾸거나 바로잡기 위함이 아닌, 현재를 있는 그대로 살아가기 위함인 것 같다.
다행히도 우리는 소설에 나오는 알레프를 찾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나거나 누군가를 만나야 할 필요가 없다. 언제든지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무릎을 꿇는 것만으로도 나의 알레프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 중에서...
"사랑을 순간적으로 시간 안에 고정시키는 것이 가능할까요?"
"노력해볼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러면 우리 생은 지옥으로 변해버릴 겁니다. 내가 이십 년 넘게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똑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에요. 아내도 나도 예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겁니다. 나는 아내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행동하길 원하지 않아요. 그녀 역시 내가 자신이 처음 만났던 그 사람이길 바라지 않습니다. 사랑은 시간을 초월해 존재합니다.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낫겠군요. 사랑은 하나의 지점인 알레프 안에 존재하는, 끊임없이 변모하는 시간과 공간입니다."
"하지만 기도는 우리를 신께 가까이 데려가주잖아요?"
"다른 질문으로 그 질문에 대답하지요. 그 모든 기도문이 내일 태양을 떠오르게 할까요? 물론 아니죠. 태양은 우주의 법칙에 따라서 떠오릅니다. 신께서는 우리가 외우는 기도문과 상관없이 우리 가까이에 있어요."
"우리의 기도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인가요?" 타티아나가 계속 묻는다.
"그런 말이 결코 아닙니다. 만약 당신이 일찍 일어나지 않는다면,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없겠지요. 마찬가지로 당신이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신께서 당신 가까이 있더라도 그분의 존재를 느끼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아까 당신들이 한 그런 기도만이 어딘가에 닿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면, 차라리 남은 평생을 미국 소노라 사막이나 인도 아슈람에서 사는 편이 나을 겁니다. 우리가 사는 이 현실적 삶에서는 신은 오히려 지금 막 기도를 한 힐랄의 바이올린 안에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