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나왔다. 잠이 오지 않아서 옛날에 썼던 일기들을 읽어봤다.
고 3 시절의 일기.
수능공부 사이에서 내 꿈에 대해 고민하던 흔적들이 보였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공부에만 집중하려 노력했던 것도 떠올랐다.
남자 12명 여자 26명. 축구경기 하려면 전부가 나가야 했던, 대신 여자아이들의 응원들 받았던...
다른 반에 비해 뛰어난 부분은 없었지만, 모든 선생님들이 좋아하고 모든 반이 부러워했던 우리 반이 떠오른다.
짤막짤막하게 써서 유치해 보이지만, 사실 주제별로 나눠서 하루 3~4개의 주제로 일기를 썼다.
나머진 공부 이야기와 나만의 이야기라...ㅎㅎ
06. 3. 15(수) D-246
그래... 초조해하지 말자...
내자신에게 훗날 불평하지 않도록....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도록...
06. 3. 23(목) D-238
나는 처음보는 사람도 잘 믿는다.
그리고 그 사람이 실망시키면 크게 상처받는다.
나와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더이상 상처받으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믿고 사랑하기보다 비판적으로 보고 무조건 싫어한다.
그런 잡종들이 안티라는 이름으로 뭉친거고....
사랑이란 건 용기가 필요한거다.
난 항상 상처받으며 살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타는 집 앞에서
'거봐라, 난 저 집이 탈 줄 알고있었다. 그래서 저 집을 조심하라고 했잖아.'
라고 말하는 재수없는 인간들이 되고싶진 않다.
06. 3. 26(일) D-235
버스타고 집에오는데 xx랑 oo만났다ㅋㅋ
오늘이 D-235라니까 대입 600일 남았댄다.
365+235=600 -ㅁ- 재수준비냐...
녀석 나보고 늙었대 ㅡ.ㅜ
이점수가 나와봐라 안늙으면 문제가있다...
06. 3. 30(목) D-231
여자애들은 역시 뭔가 다르다.
남자들은 떠들면 전부 지방방송인데
여자들은 원거리에서 반 아이들이 모두 하나의 주제로 떠든다.
역시나 H선생님 말이 제일 많다.
도대체 무슨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을까 ㅡ.ㅡ
어쨌든 듣기에 매우 즐거웠다고 할까...ㅋㅋ
* 추가설명 : 수업시간에 한해서...ㅋㅋ 수업시간에도 남자들은 지들끼리 떠든다. 맞을려고 ㅡㅡ
06. 3. 31(금) D-230
내일은 만우절이다...
학교에 일찍가서 학생부랑 화장실 간판 바꿔놔야지 ㅋㅋㅋ
장갑을 끼고 완전범죄를 이루는거다!
06. 4. 1(토) D-229, 단합대회
고기가 남아돈다. 상추는 쌓였다.
어쨌든 무진장 배부르게 먹었다.
반에서의 나의 이미지도 알았다.
"너는 쉬는시간까지 공부하고 언제 쉬어?"
나에게 물어본 건 이게 다다 ㅡ.ㅜ
이제 성적이 잘 안나오면 난 개쪽이다 -.-
06. 4. 11(화) D-219
일기장에도 내 마음을 바로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누가 본다고 자꾸 망설일까....
'가식'. 이 말이 난 제일 싫다.
뭐하러 싸가지없게 살지? 남는 게 뭐지?
세상은 내가 이해하기에 아직도 너무 복잡한 것 같다.
잘 모르겠지만...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내가 착하게 살려고 하는 것에 대해 '가식적이다'라는 말을 들은 날 같다.
06. 4. 19.(수) D-211, 공부 시작한 지 140일째.
넌 죽어야 한다.
죽을 각오로 싸워라.
06. 4. 26(수) D-204
내가 2명이라면...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내가 두 명이 되어 있으면
학교에 하루씩 교대로 가겠지...ㅋㅋㅋ
한명은 언어 외국어, 한명은 수학 사탐...
수능 점수도 확실히 올라가겠지 ㅋㅋㅋ
아예 한 5명 있으면 좋겠다...
언 수 외 사탐 2과목씩 나눠서....
학교는 일주일에 한 번 가고 ㅋㅋㅋ
공부란 물처럼 99도까지 변화가 없다고 한다.
100도가 되는 순간 끓어오른다.
그러나 멈추면 식어버린다.
한번 타올라보자!!
06. 4. 29(토) D-201
00라는 교재(수학)를 신청했다.
80점까지는 올려준댄다.
못올리기만 해봐라 -ㅁ-
06. 5. 09(화) D-191
1반 2군이랑 축구를 했다.
J, S, I...... -ㅁ- 농구팀이다.
아쉽게 2:1로 졌지만, 재미있었다.
06. 5. 10(수) D-190
아침부터 복이 터졌다. 무슨복? 먹을복ㅋㅋ
일어나니 엄마가 돈까스를 준비해 두셨다.
오랜만에 아침을 든든히 먹고 학교에 갔는데, 가정 실습이었다.
2교시에 축구하고 돌아오니 여자애들이 떡볶이를 한 그릇씩 줬다.
맛있게 먹었다 ㅋㅋㅋ
S : 누가 만들어준거 먹었어? 난 Gㅋㅋㅋ(나중에 S가 대놓고 따라다니던...)
나: 난 누구였더라? B랑 O랑...(B는 소녀시대와 함께 데뷔준비하던 SM연습생)
S : GG ㅠㅁㅠ 혼자먹냐?
흐흐... 내일 O를 좋아하는 J한테 자랑해야지 ㅡㅡㅋ
그리고 집에 오니 통닭 ㅋㅋㅋ
배불러서 많이는 못먹었지만, 좋았다.
06. 5. 15(월) D-185
배가 자꾸 아프다.
내일 스승의 날 선물을 주고 나면 나아질 것 같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별 일 아닌데.
그래도 고민들이 하나 둘 사라져가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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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5. 31(수) D-169
2주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배에 느낌표 하나 새기고 돌아왔다 -ㅁ-
병을 요약하자면, 내장에 주머니가 생긴것이 터져서 맹장을 오염시키고(?) 그로인한 염증으로 맹장염까지...
5일간 코에 호스를 끼고, 물도 못마시고
일주일째에 미음을 먹고 열흘째에 죽을 먹고...
앞으로도 한달 간 죽이다... 죽이는데 (-ㅁ-)
힘들었지만 많은 경험을 한 기억이었다.
그동안 70명도 넘는 분들이 다녀가셨다.
나는 그래도 사랑받는 사람인 것 같다.
앞으로 더 힘차게!! 파이팅!!
06. 6. 9(금) D-160
요즘 퇴원 후에 마음이 복잡하다.
아프지만 않으면 정말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의지는 어디로 간 걸까...
거기다 수시로 얼굴 굳고, 짜증내고...
성격이 변한 것 같다. 이러면 안 되는데...
본래의 내 모습처럼 다시 웃어보고 싶다.
내일은 놀토... 노는 토요일ㅋ
놀토란 말도 2~3년 후면 사라지겠지... 당연한 것일테니...
내일은 모의고사를 풀어야겠다.
결과에 좌절하지 않겠다. 배워 가는 과정이니까.
고3때의 일기는 여기서 끝이다.
이 뒤로는 수술 후 체력적인 문제로 아침에 등교하면 1교시까지 잤고, 쉬는시간마다도 최대한 잤다.
아무도 없는 학교에 1등으로 가서 공부하고있던 한별군의 모습은 더이상 볼 수 없었다..ㅋㅋ
아무튼, 그래서 일기를 쓸 여유가 없었나 보다.
하지만 앞에 내 일기들에서 볼 수 있듯이,
단지 지난 날의 추억이여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난 고3때 정말 행복했었다.
야자 끝나고 돌아가는 길은 언덕에서 시내로 내려가는 탁 트인 내리막길이었다.
멋진 야경과 밤하늘을 동시에 바라보며, 뿌듯한 하루를 보낸 것에 행복해하던 그 느낌.
수능 다음 날 제일 먼저 등교해서 빈 책상들과 칠판에 그대로 붙어 있는 수능 시간표를 바라보던
그 기억들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나 다시 이 때의 열정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