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주 전, 40년 전 약속한 그 땅을 달라던 갈렙의 열정을 주제로 한 설교를 들었다.
설교의 핵심은 "가라!"였다.
이번 주에는 어느 설교에선가 야베스의 기도 본문이 나왔다.
여기서의 핵심은 "구하라!" 인 것 같다.
2009년에 읽은 『야베스의 기도』생각이 났다.
당시에 이 책을 읽고 신나서 실천해야겠다는 나에게 어느 분이 말씀하셨다.
'야베스의 기도가 문제가 있다는 말이 있다'고...
물론 들떠 있던 나는 뾰로퉁해졌다. 기도하려고 했는데 태클이 걸렸으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느끼게 된 건, 한국의 기복신앙에 대한 경계에서 그런 문제점이 제기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를 내세워 복음을 전하던 한국 교회(특히 모 교단)는 점차 그 거품이 빠지면서 큰 위기에 처해 있다. 윗분도 그걸 나에게 경고하신 것 같다. 아무래도 마음의 중심을 보기보다는 열정이 앞서던 시기였으니까.(지금도 그렇지 않다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리고 무조건적인 복을 구하는 것이 아닌, 정말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점차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점점 과도하게 맞춘 것 같다.
사실 나는 맨 앞에 있는 설교와 같은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계발서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기도했는데, 구했는데, 믿고 나갔는데 안 된 사람들을 목회자가 책임져 주진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말씀보다 저 말을 한 목회자의 말에 더 영향을 받는 문제가 생긴다.
더 큰 문제는, 그 '안 된 사람들'의 원망섞인 토로에 대한 답변 때문에 일어난다.
"너 진짜 믿고 나갔어? 제대로 안 믿은 거 아냐?"
"너 진짜 열심히 기도했어? 새벽기도 매일 나갔어?"
"예배 한번도 안 빠지고 다 나갔어? 비전 때문에 봉사는 대충 한 거 아냐?"
"그러니까 그렇지! 제대로 했다면 분명히 이루어 주셨겠지!!"
이런 방식으로 나오면 과연 누가 거기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내 정성이 부족했구나'의 방향으로 간다면 결국 기복기도의 문제점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점차 나는 야베스의 기도를 무시한 것 같다.
구하면 주신다는 생각 자체를 의식적으로 피하고, 영적으로 성숙했다는 생각에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데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예전에 내게 조언하셨던 분의 조언은, 내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 확실히 가지 않은 상태에서 구하는 것을 염려하셨던 것이고, 당시 내 상황을 볼 때 그 조언은 정말 옳다. 하지만 오히려 나 자신이 거기에 나를 너무 가둬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 때보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다시 한 번 야베스의 기도를 되새겨보아야 할 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느 순간이든, 어떻게 구하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가 아닌,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