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을 찾아가 그 인생에서의 가르침을 받고, 그것을 모아 만든 책.
항상 후회하면서,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는 우리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을 찾게 해 주는 책이다.
1.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우리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건강하고, 완전하며, 가치 있는 존재들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어떠하든 그것에는 변함이 없다. 당신은 당신이 앓고 있는 병이나 직업이 아니라, 당신 자신일 뿐이다.
죽어가는 한 여성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지금껏 내게 맡겨진 역할들 속에서 내 삶은 너무나 평범했어요. 다른 이들과 똑같은 삶을 살아온 것 같았어요. 도대체 내 삶이 다른 이들의 삶과 뭐가 다를까 싶었어요. 하지만 병을 앓게 되면서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어요. 난 아주 특별한 사람인 거예요. 어느 누구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보거나 삶을 경험하지 못했을 거예요.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이 세상이 시작된 이후부터 끝나는 날까지, 나와 똑같은 사람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거에요."
가끔씩은 억누르고 있던 충동에 몸을 맡기고, 이상하거나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아야 한다. 당신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결과에 신경 쓰지 않고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우리가 어느 방면으로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리들 각자에게는 무한히 선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 판단하지 않고 귀기울여 들어 주는 것,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는 것 등이 그것이다.
"삶이란 마치 파이와 같지. 부모님께 한 조각,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조각, 아이들에게 한 조각, 일에 한 조각, 그렇게 한 조각씩 떼어 주다 보면 삶이 끝날 때쯤엔 자신을 위한 파이를 한 조각도 남겨 두지 못한 사람도 있단다. 그리고 처음에 자신이 어떤 파이였는지조차 모르지. 난 내가 어떤 파이였는지 알고 있단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알아내야 할 몫이지. 난 이제 내가 누구인지 알면서 이 생을 떠날 수 있단다."
2. 사랑 없이 여행하지 말라
서로에게 걸고 있는 기대를 버려야 평화롭고 행복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대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엄격한 조건을 내세운다.
인간이기 때문에 서로에게서 완전히 무조건적인 사랑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을 인생에서 단 몇 분만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경우 중 하나는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부모에게 주는 사랑입니다. 그들은 부모의 돈이나 지위에는 개의치 않습니다. 그저 부모로서의 우리를 사랑할 뿐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웃음이나 좋은 성적, 말을 잘 듣는 것에 대해 보상을 해줌으로써 결국 사랑에 조건을 다는 법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아이들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리석다고 생각하며 이미 저지른 행동을 후회하거나 자신을 학대한다. 만일 다른 사람이 실수를 했다면 아마도 당신은 "걱정 마, 누구나 다 그러는데 뭐,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하고 위로의 말을 건넬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똑같은 실수를 범하면 스스로를 쓸모없고 실패한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다.
우리는 오히려 남에게 더 관대하다. 다른사람에게 하듯 스스로에게도 친절하고 너그러워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왔고 예년처럼 이런저런 파티에 초대를 받았어요. 난 사랑을 찾기 위해 최대한 많은 파티에 참석하곤 했어요. 나를 사랑해 줄 사람, 내가 스스로에게 주지 못하는 모든 사랑을 나에게 줄 사람을 원했어요. 파티에서 가서 혹시 그런 사람이 있나 살펴본 뒤, 없다고 생각되면 그대로 나와서 다른 파티에 갔어요. 이렇게 파티마다 뛰어다니고 나서는, 외출하기 전보다 더 비참하고 외로운 기분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어요.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어요. 나 자신에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처럼 사랑을 찾아 방황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어요. 파티에 내가 찾는 완벽한 남자가 없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있겠지요. 그냥 그 사람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지내기로 했어요. 마음을 열고, 있는 그대로의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랑하기로 했어요. 그게 누구든 상관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파티가 끝나고 나서도 외롭거나 비참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사람들과 진심으로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그날 밤 내 얼굴의 미소와 웃음소리는 진짜였어요. 내가 느낀 사랑도 진실한 감정이었고, 정말 멋진 시간이었어요. 나는 사람들로부터 더 많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고, 놀랍게도 나 자신을 훨씬 더 좋아하게 되었어요.
이제 나는 행복한 사람,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더 이상 과거의 비참하고,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나는 날마다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어요."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신은 우리에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무한한 기회를 주었다. 그 기회들은 주위 모든 곳에 널려 있고, 우리는 손을 뻗어 잡기만 하면 될 뿐이다.
사랑은 언제나 우리의 삶 속에, 모든 아름다운 경험 속에, 때로는 비극 속에 존재한다. 그 상황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행복과 만족을 줄 수 없는 환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함께할, 그냥 옆에 있어 줄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행복이나 만족감보다 당신에게 훨씬 더 큰 의미가 아닐까?
3. 관계는 자신을 보는 문
우리는 낭만적인 사랑, 곧 연애만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까이에 있는 사랑을 발견하지 못할 때가 있다. 사랑은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의 수만큼 많이 우리 주위에 있다.
우연적이거나 중요하지 않은 관계란 없다. 배우자에서부터 이름 모를 전화 교환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과의 만남, 마주침, 교류는 그것이 짧든 길든, 긍정적이든 중립적이든, 고통스럽든 모두 의미가 있다. 마주치는 모든 이들은 우리를 마음속 어딘가에 있을 행복과 사랑, 또는 고통과 불행으로 인도해 줄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관계 자체가 우리를 치유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자. 완전한 삶은 당신 자신의 안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동화적인 생각에, 특별한 누군가가 나타나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만들고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 믿다 보면 스스로를 더 행복하고 더 나아지게 하는 책임, 삶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책임에 소홀하게 된다.
당신은 사람들과 어울려 기쁨과 행복을 누리기 위해 태어났다. 동시에 자신이 이미 온전하고 완전한 조재라는 사실을 발견하기 위해 태어났다.
불쾌한 감정들에 매달리는 대신, 상처를 받았을 때 상처를 준 사람에게 곧장 "아파!" 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배울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스승이 나타난다. 당신이 관계를 맺을 시기가 되면 '특별한 누군가'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4. 상실과 이별의 수업
이 세상이 하나의 학교라면, 상실과 이별은 그 학교의 주요 과목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가진 어떤 것도, 어떤 사람도 우리 곁에 영원히 붙들어 둘 수 없다. 우리는 상실을 통해, 관계가 끝났을 때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의 자신이 아닌, 홀로 있는 자신을.
우리가 어떤 물건을 소중히 간직하는 이유는 그 물건 자체의 가치보다는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의 의미는 물건과는 상관없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다.
상실을 치유하는 데는 여러 가지 단계가 있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먼저 상실을 느끼고 그 사실 자체를 인정해야 한다. 상실을 부정하는 시간을 갖되, 자신이 느끼는 것이 정상적인 감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통을 겪는 것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죽음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면 그들의 행동에서 놀라운 상징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처음엔 마치, "나는 한 때 이곳에 존재했었다."고 말하려는 듯이 열심히 자신의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다가 병세가 차츰 악화되고 감정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면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사진조차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입니다.
그들은 알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것을. 상실 너머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부분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 자기 자신의 진정한 부분, 사랑하는 이들의 진정한 부분을 당신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정말로 소중한 것은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당신이 느낀 사랑과 당신이 준 사랑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는 사실을.
5.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지 말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감사하는 마음에서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모든 여유로움은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 증상은 2차 대전 후, 포로 수용소의 생존자들이 '왜 내가 아닌 그들이 죽었지?' 하는 의문에 시달리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폭탄 테러, 비행기 추락, 자동차 사고 같은 비극적인 일을 겪었어나 목격한 사람들은 거의 어김없이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 증상을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으로 해답 없는 질문이다. 죽을 사람과 살 사람을 결정하는 것은 신이나 우주의 몫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만일 내가 더 살도록 선택받았다면, 난 지금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가?'
6. 가슴 뛰는 삶을 위하여
우리가 밤하늘을 보는 것은 말 그대로 과거를 보는 것이다. 오늘 밤의 하늘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몇 년 전, 적게는 2, 3년 전에서 많게는 100만년 전의 하늘을 보고 있는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 내보내는 빛이 지구에 와 닿기까지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 경험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는 우리 주위의 사람들의 그 사람의 과거의 기억을 통해 본다. 때문에 친구의 아버지를 만난다면, 당신은 친구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분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대개 자신의 실제 모습보다는 과거나 미래의 모습을 본다.
우리 모두는 죽음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지만,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더 이상 가능성이 아니라 확실성이다.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그들은 어떻게 할까? 그들은 점점 더 대담해진다. 더 이상 잃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삶의 종착점에 있는 환자들은, 자신들이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뒤 무한한 행복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지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상이 아니다. 두려움 속에서 살 때 당신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7. 영원과 하루
화나는 감정을 지나치게 분석하려 한다거나 그것이 타당한지, 적절한지, 정당한지 묻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과연 감정이 필요한지 의심하는 것과 같다. 화는 경험해야 할 감정일 뿐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의 다른 감정들처럼 화내는 것 역시 의사소통의 한 형태이며, 상대방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네가 오지 않아서 화가 나."
"네가 늦게 와서 화가 나."
"네가 그 정도밖에 못해서 화가 나."
"네가 한 말 때문에 화가 나."
하지만 우리는 '화'라는 첫번째 단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마음속 깊이 있는 두려움을 발견하기 위해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두번째 단계로 들어서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두려움을 표현하기보다는 화를 내는 데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화 - 네가 오지 않아서 화가 나
마음속 깊은 곳의 두려움 - 네가 오지 않았을 때 내가 버림받은 것처럼 느껴져서 두려웠어.
화 - 네가 늦게 와서 화가 나.
마음속 깊은 곳의 두려움 - 너한테는 나보다 일이 더 중요해.
화 - 네가 그 정도밖에 못해서 화가 나.
마음속 깊은 곳의 두려움 - 우리 수입이 줄어서 집세를 못 내게 될까 봐 겁이 나.
화 - 네가 한 말 때문에 화가 나.
마음속 깊은 곳의 두려움 - 네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될까 봐 두려워.
많은 사람들이 화내는 자신을 자책하면서 화를 삭인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화를 내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내면에 쌓여 있는, 자신에 대해서나 타인에 대해서나 또는 신에 대해 갖고 있는 다양한 층의 분노를 해결하는 일이 중요하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신을 욕하며 소리를 지르거나 심지어는 병원 침대를 야구 방망이로 내려치며 화를 표현하는 것은 어떤 이들에게는 도움이 된다. 그들은 그 화난 감정을 해결하게 되어 얼마나 좋았는지 종종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신을 욕한 사람들도 처음에는 신이 자신들에게 번개를 내리거나 하는 식으로 벌을 내릴까 봐 두려워했지만, 그 이후 전보다 신과 더 가까워진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다.
"신은 내가 화를 내도 받아 줄 만큼 마음이 넓은 분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나의 분노가 결국에는 그분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수십 년 동안 임종을 앞둔 환자들과 상담을 해오면서 단 한 번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더 일했어야 하는데." 라거나 "근무 시간이 8시간이 아니라 9시간이었다면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 텐데." 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일 때문에 미칠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십시오. 그들이 영화라고 대답한다면, "영화를 마지막으로 본 때가 언제인가?" 하고 물어보십시오. 그들은 대부분 "몇 달 전."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일이 아니라,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는 것이 당신을 미치게 하는 것입니다.
8. 무엇을 위해 배우는가
많은 이들이 삶의 사소한 상황조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심지어 강연을 들을 때도 강연자에게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손을 드는 사람들을 꼭 만나게 된다. 그들은 강연자에게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도 있고, 그것을 듣고 난 뒤 자신의 생각을 조금 바굴 수도 있다. 그들이 강연자의 설명을 다 듣고 난 뒤, "난 받아들일 수 없어."라거나 "이 사람의 강연은 다시는 듣지 않을 거야." 하고 말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설명을 듣기도 전에 반대부터 한다면 당신은 배움과 받아들임의 상황을 거부하는 것이다.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경이로운 평화를 얻을 수 있다. 불행히도 운명에 순응하는 것을 나약함의 상징이나 포기, 굴복으로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다. 하지만 받아들임은 나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고 잘 풀릴 것이라는 믿음에 자신을 맡김으로 위안과 힘을 얻는 일이다.
그렇다면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줄다리기 게임을 끝내는 것과 같이 그저 줄을, 우리의 방식을 내려놓는 것이다. 처음으로 잠시 멈추고 숨을 돌리면서, 비로소 우주와 신을 신뢰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삶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고 싶은 마음과 자신이 진리를 알고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불가능한 상황들을 통제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 '내 뜻대로' 가 아닌, '당신을 뜻대로'를 말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우리는 내일이 와서 상황이 바뀔 때까지는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일 행복이 가능하다면 오늘도 가능할 수 있다. 내일 사랑할 수 있다면 오늘도 사랑할 수 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도 치유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있는 그대로의 삶에 순종하면 상황은 기적처럼 변할 수 있다.
평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삶에 순응할 때입니다.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받아들일 때입니다.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한다고 느낀다면,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고 싶다면, 순종할 때입니다.
9. 용서와 치유의 시간
용서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서나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나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용서는 다시 한 번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는 자유를 주고, 그리하여 모두가 관계를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얻는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진정한 용서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그들은 "나는 정말 옳았고, 그렇기 때문에 네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어. 하지만 내가 너그럽게 너를 용서해 줄게." 하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은 "잘못한 건 너나 나나 다 마찬가지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하지만 난 더 이상 네가 저지른 잘못으로 너를 판단하거나 내 잘못으로 내가 판단되기를 원하지 않아." 하고 말한다.
10.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신은 실수를 하면서 계속 발전해 가는 선한 사람은 행복할 수 있지만, 자만심에 찬 사람은 결코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신은 이 사람이 이 세상의 일을 끝낼 때까지 자신의 선한 행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았습니다. 이 사람은 선행을 계속했고 주위 모든 사람들이 그를 칭찬했지만, 그 자신은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이 사람이 생을 마감했을 때, 신은 그가 행한 선행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것이 언제였습니까?
아침의 냄새를 맡아 본 것은 언제였습니까?
아기의 머리를 만져 본 것은?
정말로 음식을 맛보고 즐긴 것은?
맨발로 풀밭을 걸어 본 것은?
파란 하늘을 본 것은 또 언제였습니까?
이것은은 다시 얻지 못할지도 모르는 경험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 가까이 살지만 바다를 볼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별 아래에 살지만, 가끔이라도 하늘을 올려다보나요? 삶을 진정으로 만지고 맛보고 있나요?
평범한 것 속에서 특별한 것을 보고 느끼나요?
항상 후회하면서,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는 우리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을 찾게 해 주는 책이다.
1.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우리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건강하고, 완전하며, 가치 있는 존재들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어떠하든 그것에는 변함이 없다. 당신은 당신이 앓고 있는 병이나 직업이 아니라, 당신 자신일 뿐이다.
죽어가는 한 여성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지금껏 내게 맡겨진 역할들 속에서 내 삶은 너무나 평범했어요. 다른 이들과 똑같은 삶을 살아온 것 같았어요. 도대체 내 삶이 다른 이들의 삶과 뭐가 다를까 싶었어요. 하지만 병을 앓게 되면서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어요. 난 아주 특별한 사람인 거예요. 어느 누구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보거나 삶을 경험하지 못했을 거예요.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이 세상이 시작된 이후부터 끝나는 날까지, 나와 똑같은 사람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거에요."
가끔씩은 억누르고 있던 충동에 몸을 맡기고, 이상하거나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아야 한다. 당신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결과에 신경 쓰지 않고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우리가 어느 방면으로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리들 각자에게는 무한히 선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 판단하지 않고 귀기울여 들어 주는 것,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는 것 등이 그것이다.
"삶이란 마치 파이와 같지. 부모님께 한 조각,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조각, 아이들에게 한 조각, 일에 한 조각, 그렇게 한 조각씩 떼어 주다 보면 삶이 끝날 때쯤엔 자신을 위한 파이를 한 조각도 남겨 두지 못한 사람도 있단다. 그리고 처음에 자신이 어떤 파이였는지조차 모르지. 난 내가 어떤 파이였는지 알고 있단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알아내야 할 몫이지. 난 이제 내가 누구인지 알면서 이 생을 떠날 수 있단다."
2. 사랑 없이 여행하지 말라
서로에게 걸고 있는 기대를 버려야 평화롭고 행복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대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엄격한 조건을 내세운다.
인간이기 때문에 서로에게서 완전히 무조건적인 사랑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을 인생에서 단 몇 분만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경우 중 하나는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부모에게 주는 사랑입니다. 그들은 부모의 돈이나 지위에는 개의치 않습니다. 그저 부모로서의 우리를 사랑할 뿐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웃음이나 좋은 성적, 말을 잘 듣는 것에 대해 보상을 해줌으로써 결국 사랑에 조건을 다는 법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아이들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리석다고 생각하며 이미 저지른 행동을 후회하거나 자신을 학대한다. 만일 다른 사람이 실수를 했다면 아마도 당신은 "걱정 마, 누구나 다 그러는데 뭐,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하고 위로의 말을 건넬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똑같은 실수를 범하면 스스로를 쓸모없고 실패한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다.
우리는 오히려 남에게 더 관대하다. 다른사람에게 하듯 스스로에게도 친절하고 너그러워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왔고 예년처럼 이런저런 파티에 초대를 받았어요. 난 사랑을 찾기 위해 최대한 많은 파티에 참석하곤 했어요. 나를 사랑해 줄 사람, 내가 스스로에게 주지 못하는 모든 사랑을 나에게 줄 사람을 원했어요. 파티에서 가서 혹시 그런 사람이 있나 살펴본 뒤, 없다고 생각되면 그대로 나와서 다른 파티에 갔어요. 이렇게 파티마다 뛰어다니고 나서는, 외출하기 전보다 더 비참하고 외로운 기분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어요.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어요. 나 자신에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처럼 사랑을 찾아 방황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어요. 파티에 내가 찾는 완벽한 남자가 없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있겠지요. 그냥 그 사람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지내기로 했어요. 마음을 열고, 있는 그대로의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랑하기로 했어요. 그게 누구든 상관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파티가 끝나고 나서도 외롭거나 비참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사람들과 진심으로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그날 밤 내 얼굴의 미소와 웃음소리는 진짜였어요. 내가 느낀 사랑도 진실한 감정이었고, 정말 멋진 시간이었어요. 나는 사람들로부터 더 많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고, 놀랍게도 나 자신을 훨씬 더 좋아하게 되었어요.
이제 나는 행복한 사람,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더 이상 과거의 비참하고,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나는 날마다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어요."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신은 우리에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무한한 기회를 주었다. 그 기회들은 주위 모든 곳에 널려 있고, 우리는 손을 뻗어 잡기만 하면 될 뿐이다.
사랑은 언제나 우리의 삶 속에, 모든 아름다운 경험 속에, 때로는 비극 속에 존재한다. 그 상황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행복과 만족을 줄 수 없는 환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함께할, 그냥 옆에 있어 줄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행복이나 만족감보다 당신에게 훨씬 더 큰 의미가 아닐까?
3. 관계는 자신을 보는 문
우리는 낭만적인 사랑, 곧 연애만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까이에 있는 사랑을 발견하지 못할 때가 있다. 사랑은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의 수만큼 많이 우리 주위에 있다.
우연적이거나 중요하지 않은 관계란 없다. 배우자에서부터 이름 모를 전화 교환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과의 만남, 마주침, 교류는 그것이 짧든 길든, 긍정적이든 중립적이든, 고통스럽든 모두 의미가 있다. 마주치는 모든 이들은 우리를 마음속 어딘가에 있을 행복과 사랑, 또는 고통과 불행으로 인도해 줄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관계 자체가 우리를 치유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자. 완전한 삶은 당신 자신의 안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동화적인 생각에, 특별한 누군가가 나타나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만들고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 믿다 보면 스스로를 더 행복하고 더 나아지게 하는 책임, 삶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책임에 소홀하게 된다.
당신은 사람들과 어울려 기쁨과 행복을 누리기 위해 태어났다. 동시에 자신이 이미 온전하고 완전한 조재라는 사실을 발견하기 위해 태어났다.
불쾌한 감정들에 매달리는 대신, 상처를 받았을 때 상처를 준 사람에게 곧장 "아파!" 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배울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스승이 나타난다. 당신이 관계를 맺을 시기가 되면 '특별한 누군가'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4. 상실과 이별의 수업
이 세상이 하나의 학교라면, 상실과 이별은 그 학교의 주요 과목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가진 어떤 것도, 어떤 사람도 우리 곁에 영원히 붙들어 둘 수 없다. 우리는 상실을 통해, 관계가 끝났을 때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의 자신이 아닌, 홀로 있는 자신을.
우리가 어떤 물건을 소중히 간직하는 이유는 그 물건 자체의 가치보다는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의 의미는 물건과는 상관없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다.
상실을 치유하는 데는 여러 가지 단계가 있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먼저 상실을 느끼고 그 사실 자체를 인정해야 한다. 상실을 부정하는 시간을 갖되, 자신이 느끼는 것이 정상적인 감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통을 겪는 것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죽음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면 그들의 행동에서 놀라운 상징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처음엔 마치, "나는 한 때 이곳에 존재했었다."고 말하려는 듯이 열심히 자신의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다가 병세가 차츰 악화되고 감정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면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사진조차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입니다.
그들은 알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것을. 상실 너머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부분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 자기 자신의 진정한 부분, 사랑하는 이들의 진정한 부분을 당신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정말로 소중한 것은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당신이 느낀 사랑과 당신이 준 사랑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는 사실을.
5.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지 말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감사하는 마음에서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모든 여유로움은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 증상은 2차 대전 후, 포로 수용소의 생존자들이 '왜 내가 아닌 그들이 죽었지?' 하는 의문에 시달리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폭탄 테러, 비행기 추락, 자동차 사고 같은 비극적인 일을 겪었어나 목격한 사람들은 거의 어김없이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 증상을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으로 해답 없는 질문이다. 죽을 사람과 살 사람을 결정하는 것은 신이나 우주의 몫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만일 내가 더 살도록 선택받았다면, 난 지금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가?'
6. 가슴 뛰는 삶을 위하여
우리가 밤하늘을 보는 것은 말 그대로 과거를 보는 것이다. 오늘 밤의 하늘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몇 년 전, 적게는 2, 3년 전에서 많게는 100만년 전의 하늘을 보고 있는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 내보내는 빛이 지구에 와 닿기까지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 경험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는 우리 주위의 사람들의 그 사람의 과거의 기억을 통해 본다. 때문에 친구의 아버지를 만난다면, 당신은 친구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분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대개 자신의 실제 모습보다는 과거나 미래의 모습을 본다.
우리 모두는 죽음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지만,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더 이상 가능성이 아니라 확실성이다.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그들은 어떻게 할까? 그들은 점점 더 대담해진다. 더 이상 잃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삶의 종착점에 있는 환자들은, 자신들이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뒤 무한한 행복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지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상이 아니다. 두려움 속에서 살 때 당신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7. 영원과 하루
화나는 감정을 지나치게 분석하려 한다거나 그것이 타당한지, 적절한지, 정당한지 묻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과연 감정이 필요한지 의심하는 것과 같다. 화는 경험해야 할 감정일 뿐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의 다른 감정들처럼 화내는 것 역시 의사소통의 한 형태이며, 상대방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네가 오지 않아서 화가 나."
"네가 늦게 와서 화가 나."
"네가 그 정도밖에 못해서 화가 나."
"네가 한 말 때문에 화가 나."
하지만 우리는 '화'라는 첫번째 단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마음속 깊이 있는 두려움을 발견하기 위해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두번째 단계로 들어서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두려움을 표현하기보다는 화를 내는 데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화 - 네가 오지 않아서 화가 나
마음속 깊은 곳의 두려움 - 네가 오지 않았을 때 내가 버림받은 것처럼 느껴져서 두려웠어.
화 - 네가 늦게 와서 화가 나.
마음속 깊은 곳의 두려움 - 너한테는 나보다 일이 더 중요해.
화 - 네가 그 정도밖에 못해서 화가 나.
마음속 깊은 곳의 두려움 - 우리 수입이 줄어서 집세를 못 내게 될까 봐 겁이 나.
화 - 네가 한 말 때문에 화가 나.
마음속 깊은 곳의 두려움 - 네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될까 봐 두려워.
많은 사람들이 화내는 자신을 자책하면서 화를 삭인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화를 내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내면에 쌓여 있는, 자신에 대해서나 타인에 대해서나 또는 신에 대해 갖고 있는 다양한 층의 분노를 해결하는 일이 중요하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신을 욕하며 소리를 지르거나 심지어는 병원 침대를 야구 방망이로 내려치며 화를 표현하는 것은 어떤 이들에게는 도움이 된다. 그들은 그 화난 감정을 해결하게 되어 얼마나 좋았는지 종종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신을 욕한 사람들도 처음에는 신이 자신들에게 번개를 내리거나 하는 식으로 벌을 내릴까 봐 두려워했지만, 그 이후 전보다 신과 더 가까워진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다.
"신은 내가 화를 내도 받아 줄 만큼 마음이 넓은 분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나의 분노가 결국에는 그분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수십 년 동안 임종을 앞둔 환자들과 상담을 해오면서 단 한 번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더 일했어야 하는데." 라거나 "근무 시간이 8시간이 아니라 9시간이었다면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 텐데." 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일 때문에 미칠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십시오. 그들이 영화라고 대답한다면, "영화를 마지막으로 본 때가 언제인가?" 하고 물어보십시오. 그들은 대부분 "몇 달 전."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일이 아니라,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는 것이 당신을 미치게 하는 것입니다.
8. 무엇을 위해 배우는가
많은 이들이 삶의 사소한 상황조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심지어 강연을 들을 때도 강연자에게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손을 드는 사람들을 꼭 만나게 된다. 그들은 강연자에게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도 있고, 그것을 듣고 난 뒤 자신의 생각을 조금 바굴 수도 있다. 그들이 강연자의 설명을 다 듣고 난 뒤, "난 받아들일 수 없어."라거나 "이 사람의 강연은 다시는 듣지 않을 거야." 하고 말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설명을 듣기도 전에 반대부터 한다면 당신은 배움과 받아들임의 상황을 거부하는 것이다.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경이로운 평화를 얻을 수 있다. 불행히도 운명에 순응하는 것을 나약함의 상징이나 포기, 굴복으로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다. 하지만 받아들임은 나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고 잘 풀릴 것이라는 믿음에 자신을 맡김으로 위안과 힘을 얻는 일이다.
그렇다면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줄다리기 게임을 끝내는 것과 같이 그저 줄을, 우리의 방식을 내려놓는 것이다. 처음으로 잠시 멈추고 숨을 돌리면서, 비로소 우주와 신을 신뢰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삶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고 싶은 마음과 자신이 진리를 알고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불가능한 상황들을 통제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 '내 뜻대로' 가 아닌, '당신을 뜻대로'를 말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우리는 내일이 와서 상황이 바뀔 때까지는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일 행복이 가능하다면 오늘도 가능할 수 있다. 내일 사랑할 수 있다면 오늘도 사랑할 수 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도 치유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있는 그대로의 삶에 순종하면 상황은 기적처럼 변할 수 있다.
평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삶에 순응할 때입니다.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받아들일 때입니다.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한다고 느낀다면,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고 싶다면, 순종할 때입니다.
9. 용서와 치유의 시간
용서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서나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나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용서는 다시 한 번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는 자유를 주고, 그리하여 모두가 관계를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얻는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진정한 용서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그들은 "나는 정말 옳았고, 그렇기 때문에 네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어. 하지만 내가 너그럽게 너를 용서해 줄게." 하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은 "잘못한 건 너나 나나 다 마찬가지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하지만 난 더 이상 네가 저지른 잘못으로 너를 판단하거나 내 잘못으로 내가 판단되기를 원하지 않아." 하고 말한다.
10.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신은 실수를 하면서 계속 발전해 가는 선한 사람은 행복할 수 있지만, 자만심에 찬 사람은 결코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신은 이 사람이 이 세상의 일을 끝낼 때까지 자신의 선한 행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았습니다. 이 사람은 선행을 계속했고 주위 모든 사람들이 그를 칭찬했지만, 그 자신은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이 사람이 생을 마감했을 때, 신은 그가 행한 선행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것이 언제였습니까?
아침의 냄새를 맡아 본 것은 언제였습니까?
아기의 머리를 만져 본 것은?
정말로 음식을 맛보고 즐긴 것은?
맨발로 풀밭을 걸어 본 것은?
파란 하늘을 본 것은 또 언제였습니까?
이것은은 다시 얻지 못할지도 모르는 경험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 가까이 살지만 바다를 볼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별 아래에 살지만, 가끔이라도 하늘을 올려다보나요? 삶을 진정으로 만지고 맛보고 있나요?
평범한 것 속에서 특별한 것을 보고 느끼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