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훈련병이 읽겠다고 훈련소까지 가져왔다가
내 책상에 3/14일 한도로 압수해 둔 책..ㅋ
오늘 두 시간만에 후딱 읽었다.
작년에 정말 엄청난 열풍을 몰고 온 책이다.
책 표지를 보는 순간 그냥 베스트셀러구나 하는 생각이 든 책이었다.
그리고 남 보는 거 몇 페이지 보고서는 내용도 짐작해버렸다.
그래서 읽지 않았다. 돈 내고 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좋은 영화 한 편 보는 정도로, 커피 한 잔 마신다는 생각으로 구입한다면 아깝지 않겠지만,
뭔가를 얻어낸다는 기분으로 사기엔 아까웠다.
본 책은 저자가 여기 저기 쓴 글들을 합쳐서 만든 모음집이다.
이 책이 성공한 이유? 아마도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위로'를 전달해서이지 싶다.
하지만, 실제적인 삶에 도움을 주기는 어려운 책이다.
책 이야기보다는, 책을 보며 내가 생각했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었다.
#1.
2010년 10월. 시력 교정 수술을 하러 강남 모 안과에 찾아갔다. 저렴한 가격에 라식, 라섹을 할 수 있다며 정말 많은 광고를 하던 안과였고, 찾아오는 사람도 어마어마했다. 시력 교정을 위한 무료 검사 과정도 약 스무 가지. 편히 쉴 수 있는 카페 형식의 진료 대기실에서 차를 마시며 순번을 기다려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내 눈은 라식이나 라섹을 하기가 어려운 눈이라고 한다. 동공 크기가 일반인보다 커서, 수술을 한다 해도 중앙부는 잘 보이나 외곽으로는 흐릿하게 보인다나? 긍정적인 나는 카메라 렌즈로 보는 세상처럼 중심은 똑바로 보이고 외곽은 흐릿하다는 설명이 맘에 들었지만, 평생 그렇게 생각할 자신은 없을 것 같아 의사의 권유대로 수술을 보류했다.
많은 인터넷 검색 끝에 압구정에 있는 다른 안과로 다시 찾아갔다. 안과 의사들이 찾아와 수술하는 병원이라고 한다. 이거면 엄마의 주 레퍼토리인 '안과 의사들도 수술 안 한다더라'도 이길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병원에 들어섰다. 압구정이니까 강남에 있는 안과들보다 시설이 좋을 것 같았는데, 뭔가 조용하고 규모도 작았다. 심지어는 시력 검사도 몇 개 없었다. 이게 뭘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내 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단, 내 눈은 최악이었다. 렌즈를 껴 본 적이 없는 사람, 안경을 오랫동안 착용했던 사람, 작은 차이에도 민감한 이공계 관련 학생, 심각한 난시를 가진 사람, 그리고 남자. 이 중에 이공계 학생인 걸 빼면 모든 최악의 조건을 다 가진 사람이 나였다. 이 말을 하면서, 의사선생님은 사실 내 눈이 제일 수술하기 싫은 눈이라고 말했다. 다른 병원에 갔으면 아마 안 했을 거라면서...
"어? 저 다른 병원 갔는데요. 눈동자가 커서 수술을 못한다는데...."
의사선생님의 눈빛과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선생님이 서랍에서 꺼낸 서류에는 모 병원의 구직활동이 캡쳐되어 있었다. 그 모 병원은 내가 강남에서 찾아간 그 병원이었다. 거기에는 그 병원에서 안과 전문의가 아닌, 견습 수준의 의사들을 채용하는 공고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런 병원들은 어려운 환자들은 받질 않아요? 왜? 실력이 없으니까, 잘못됐을 경우나 수술한 사람이 만족하지 못할 경우 답할 수가 없거든요. 그런 환자들 다 버려도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니까, 그 사람들 중 수술하기 쉬운 사람만 수술해도 손쉽게 운영할 수 있는 거죠."
다른 병원에서 시력 교정 수술을 하려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문제도 있지만, 쉬운 환자들은 그쪽 병원으로 다 빼앗기고 어려운 환자들만 이리 올 거라 생각하니 의사선생님이 분노하는 이유가 이해가 됐다. 현재 그 안과는 의사협회에서 퇴출된 상태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영업을 막을 수는 없다고 한다.
그 병원 이외에도 많은 병원들이 박리다매 형식으로 시력 교정 수술을 하고 있다. 다들 하는 말은 똑같다.
'시력 교정 수술에 들어 있는 거품을 쪽! 뺐다'.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수술 받을 권리가 있다.'
'국군 장병 여러분의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이 병원에서 수술이 잘못되었다거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수술을 한 사람들, 수술하기 쉬웠던 그 사람들은 자기 눈에 불만이 없다. 싸니까.
수술 못 한 사람들은 그럴듯한 이유를 들었거나 다른 안과에서 해결했기에 굳이 나서지 않는다.
#2.
必死卽生 必生卽死(필사즉생 필생즉사)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님이 한 말이다. 2011년에 난 이 말을 두 번 봤다. 한번은 임관식에서 대통령이 선사한 호부(虎符:조선시대 임금이 임지로 떠나는 장수에게 하사한 상징물)에서, 한번은 유격장 식당 입구에서였다.
3월 초, 추위 속에 받은 호부에 새겨진 글을 보며 품은 '정말 죽고자 하면 살까?'라는 의문은, 6월 뜨거운 태양 아래서 해답이 나왔다. '저 말은 옳지 않아.'
총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죽기를 각오했는데 산 사람, 죽기를 각오했는데 죽은 사람, 살고자 했는데 죽은 사람, 살고자 했는데 산 사람.
죽기를 각오했는데 죽은 사람은 저 말에 반박할 수 없다. 죽었기 때문에.
살고자 했는데 죽은 사람 역시 저 말에 반박할 수 없다. 죽었기 때문에.
살고자 했는데 살았던 사람은 저 말에 반박할 수 없다. 잘한 게 없어서.
죽기를 각오했는데 어쩌다 산 사람들은 말한다. "오, 정말 죽기를 각오했더니 살았어!!"
결국 인생은 그런 거다. 살아남은 일부의 사람들이 기적을 노래하고 전설을 만든다.
그 기적과 전설에 이끌려 죽기를 각오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남은 건 확률 뿐이다. 만약에, 죽고자 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서든 따질 기회가 있다면, 사람들은 마지막 한 수가 있다. "정말 죽기를 각오했냐? 정말?"
흠...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같지 않아?
#3.
클릭
#4.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Part 1.에서는 교수를 꿈꾸는 시간 강사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대기업 스카우트를 포기하고 실낱 같은 교수 임용을 바라보는 그를 향해 '어리석다'고 하면서도 그의 열정을 지지한다. 여러분의 시계는 아직 아침 7시라고, 그대의 열망을 따라가라고 말한다.
Part 4.에서는 반대다. 일단 열차에 올라타라고, 무슨 일이든 시작하고 그 일에서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라고 말한다. 당장 원하는 일이 아니라 해도, 일단 '무언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앞에서 한 이야기와 뭔가 맞지 않는 듯 싶다.
그 해답은 Part 3. 어딘가에 쓰여 있었다. 이런 모순되는 두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은 뒤, 저자는 정답을 말해주지 않는다. 선택은 그대들의 몫이라고 한다. 저자는 제자들과의 상담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 결국 나는 그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해 줄 뿐이고, 그게 상담자의 역할이라고.
저자는 당신 삶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수많은 책에서 말한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 생생히 꿈꾸면 이루어진다. 꿈은 노력하는 자의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복 신앙과 더해진 한국 기독교에서도 이런 이야기들이 많다. 간절히 기도하면 이 세상에서 기적이 일어난다고.
수많은 암 환자들이 용하다는 기도원에 모였다. 더러는 나아서 집에 돌아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기에 기적처럼 암을 이겨낸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만큼의 암 환자가 한 곳에 모인 병원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한 쪽은 기적이고 한 쪽은 의학의 힘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정말 무섭도록 어리석은 일이다.
기적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우리가 '우연'이라고 말하는 그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우연이라는 이름의 기적을 아무 곳에나 갖다붙인다면, 그건 잘못된 믿음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잘못된 믿음은 오히려 믿지 않는 자들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문제에 대해 해답은 얻었는데, 머릿속 이야기를 정리해 낼 능력이 내게 아직 부족하다....
아무튼, 이 생각 끝에 내 믿음은 더 굳건해졌다. 앞서 작성한 글에서 말했듯, 믿음은 합리적인 생각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간다. 더러는 성공하고 대부분은 좌절한다. 그들에게, 책에서 읽은 대로 "정말 열심히 했어? 모든 걸 다 걸었어?" "구체적으로 생각했어? 얼마나 구체적으로 했는데?" "네 믿음이 부족한 건 아냐? 열심히 기도했어? 새벽기도 나갔다고? 철야예배도 나갔어?" 라고 말하기 전에, 다음 책을 한 번 읽어봤으면 한다. 내가 읽고서 정리는 못헀지만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준 책이다.
그리고 남 보는 거 몇 페이지 보고서는 내용도 짐작해버렸다.
그래서 읽지 않았다. 돈 내고 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좋은 영화 한 편 보는 정도로, 커피 한 잔 마신다는 생각으로 구입한다면 아깝지 않겠지만,
뭔가를 얻어낸다는 기분으로 사기엔 아까웠다.
본 책은 저자가 여기 저기 쓴 글들을 합쳐서 만든 모음집이다.
이 책이 성공한 이유? 아마도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위로'를 전달해서이지 싶다.
하지만, 실제적인 삶에 도움을 주기는 어려운 책이다.
책 이야기보다는, 책을 보며 내가 생각했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었다.
#1.
2010년 10월. 시력 교정 수술을 하러 강남 모 안과에 찾아갔다. 저렴한 가격에 라식, 라섹을 할 수 있다며 정말 많은 광고를 하던 안과였고, 찾아오는 사람도 어마어마했다. 시력 교정을 위한 무료 검사 과정도 약 스무 가지. 편히 쉴 수 있는 카페 형식의 진료 대기실에서 차를 마시며 순번을 기다려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내 눈은 라식이나 라섹을 하기가 어려운 눈이라고 한다. 동공 크기가 일반인보다 커서, 수술을 한다 해도 중앙부는 잘 보이나 외곽으로는 흐릿하게 보인다나? 긍정적인 나는 카메라 렌즈로 보는 세상처럼 중심은 똑바로 보이고 외곽은 흐릿하다는 설명이 맘에 들었지만, 평생 그렇게 생각할 자신은 없을 것 같아 의사의 권유대로 수술을 보류했다.
많은 인터넷 검색 끝에 압구정에 있는 다른 안과로 다시 찾아갔다. 안과 의사들이 찾아와 수술하는 병원이라고 한다. 이거면 엄마의 주 레퍼토리인 '안과 의사들도 수술 안 한다더라'도 이길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병원에 들어섰다. 압구정이니까 강남에 있는 안과들보다 시설이 좋을 것 같았는데, 뭔가 조용하고 규모도 작았다. 심지어는 시력 검사도 몇 개 없었다. 이게 뭘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내 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단, 내 눈은 최악이었다. 렌즈를 껴 본 적이 없는 사람, 안경을 오랫동안 착용했던 사람, 작은 차이에도 민감한 이공계 관련 학생, 심각한 난시를 가진 사람, 그리고 남자. 이 중에 이공계 학생인 걸 빼면 모든 최악의 조건을 다 가진 사람이 나였다. 이 말을 하면서, 의사선생님은 사실 내 눈이 제일 수술하기 싫은 눈이라고 말했다. 다른 병원에 갔으면 아마 안 했을 거라면서...
"어? 저 다른 병원 갔는데요. 눈동자가 커서 수술을 못한다는데...."
의사선생님의 눈빛과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선생님이 서랍에서 꺼낸 서류에는 모 병원의 구직활동이 캡쳐되어 있었다. 그 모 병원은 내가 강남에서 찾아간 그 병원이었다. 거기에는 그 병원에서 안과 전문의가 아닌, 견습 수준의 의사들을 채용하는 공고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런 병원들은 어려운 환자들은 받질 않아요? 왜? 실력이 없으니까, 잘못됐을 경우나 수술한 사람이 만족하지 못할 경우 답할 수가 없거든요. 그런 환자들 다 버려도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니까, 그 사람들 중 수술하기 쉬운 사람만 수술해도 손쉽게 운영할 수 있는 거죠."
다른 병원에서 시력 교정 수술을 하려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문제도 있지만, 쉬운 환자들은 그쪽 병원으로 다 빼앗기고 어려운 환자들만 이리 올 거라 생각하니 의사선생님이 분노하는 이유가 이해가 됐다. 현재 그 안과는 의사협회에서 퇴출된 상태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영업을 막을 수는 없다고 한다.
그 병원 이외에도 많은 병원들이 박리다매 형식으로 시력 교정 수술을 하고 있다. 다들 하는 말은 똑같다.
'시력 교정 수술에 들어 있는 거품을 쪽! 뺐다'.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수술 받을 권리가 있다.'
'국군 장병 여러분의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이 병원에서 수술이 잘못되었다거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수술을 한 사람들, 수술하기 쉬웠던 그 사람들은 자기 눈에 불만이 없다. 싸니까.
수술 못 한 사람들은 그럴듯한 이유를 들었거나 다른 안과에서 해결했기에 굳이 나서지 않는다.
#2.
必死卽生 必生卽死(필사즉생 필생즉사)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님이 한 말이다. 2011년에 난 이 말을 두 번 봤다. 한번은 임관식에서 대통령이 선사한 호부(虎符:조선시대 임금이 임지로 떠나는 장수에게 하사한 상징물)에서, 한번은 유격장 식당 입구에서였다.
3월 초, 추위 속에 받은 호부에 새겨진 글을 보며 품은 '정말 죽고자 하면 살까?'라는 의문은, 6월 뜨거운 태양 아래서 해답이 나왔다. '저 말은 옳지 않아.'
총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죽기를 각오했는데 산 사람, 죽기를 각오했는데 죽은 사람, 살고자 했는데 죽은 사람, 살고자 했는데 산 사람.
죽기를 각오했는데 죽은 사람은 저 말에 반박할 수 없다. 죽었기 때문에.
살고자 했는데 죽은 사람 역시 저 말에 반박할 수 없다. 죽었기 때문에.
살고자 했는데 살았던 사람은 저 말에 반박할 수 없다. 잘한 게 없어서.
죽기를 각오했는데 어쩌다 산 사람들은 말한다. "오, 정말 죽기를 각오했더니 살았어!!"
결국 인생은 그런 거다. 살아남은 일부의 사람들이 기적을 노래하고 전설을 만든다.
그 기적과 전설에 이끌려 죽기를 각오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남은 건 확률 뿐이다. 만약에, 죽고자 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서든 따질 기회가 있다면, 사람들은 마지막 한 수가 있다. "정말 죽기를 각오했냐? 정말?"
흠...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같지 않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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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Part 1.에서는 교수를 꿈꾸는 시간 강사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대기업 스카우트를 포기하고 실낱 같은 교수 임용을 바라보는 그를 향해 '어리석다'고 하면서도 그의 열정을 지지한다. 여러분의 시계는 아직 아침 7시라고, 그대의 열망을 따라가라고 말한다.
Part 4.에서는 반대다. 일단 열차에 올라타라고, 무슨 일이든 시작하고 그 일에서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라고 말한다. 당장 원하는 일이 아니라 해도, 일단 '무언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앞에서 한 이야기와 뭔가 맞지 않는 듯 싶다.
그 해답은 Part 3. 어딘가에 쓰여 있었다. 이런 모순되는 두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은 뒤, 저자는 정답을 말해주지 않는다. 선택은 그대들의 몫이라고 한다. 저자는 제자들과의 상담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 결국 나는 그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해 줄 뿐이고, 그게 상담자의 역할이라고.
저자는 당신 삶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수많은 책에서 말한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 생생히 꿈꾸면 이루어진다. 꿈은 노력하는 자의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복 신앙과 더해진 한국 기독교에서도 이런 이야기들이 많다. 간절히 기도하면 이 세상에서 기적이 일어난다고.
수많은 암 환자들이 용하다는 기도원에 모였다. 더러는 나아서 집에 돌아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기에 기적처럼 암을 이겨낸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만큼의 암 환자가 한 곳에 모인 병원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한 쪽은 기적이고 한 쪽은 의학의 힘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정말 무섭도록 어리석은 일이다.
기적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우리가 '우연'이라고 말하는 그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우연이라는 이름의 기적을 아무 곳에나 갖다붙인다면, 그건 잘못된 믿음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잘못된 믿음은 오히려 믿지 않는 자들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문제에 대해 해답은 얻었는데, 머릿속 이야기를 정리해 낼 능력이 내게 아직 부족하다....
아무튼, 이 생각 끝에 내 믿음은 더 굳건해졌다. 앞서 작성한 글에서 말했듯, 믿음은 합리적인 생각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간다. 더러는 성공하고 대부분은 좌절한다. 그들에게, 책에서 읽은 대로 "정말 열심히 했어? 모든 걸 다 걸었어?" "구체적으로 생각했어? 얼마나 구체적으로 했는데?" "네 믿음이 부족한 건 아냐? 열심히 기도했어? 새벽기도 나갔다고? 철야예배도 나갔어?" 라고 말하기 전에, 다음 책을 한 번 읽어봤으면 한다. 내가 읽고서 정리는 못헀지만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