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에 숨겨진 성경 이야기를 알아보는 책.
그냥 편안하게 읽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열왕기하 5장. 나아만이 문둥병을 치유받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다.
(왕을 섬기느라 다른 신에 몸을 굽혀야 하는 처지에 대해' 평안히 가라'는 답을 받고 돌아선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는 엘리사가 거절한 나아만의 선물이 아까워 나아만에게 거짓말을 하여 선물을 받아낸다.
엘리사는 그것을 알고 게하시에게 문둥병의 저주를 내리고, 게하시는 즉시 문둥병에 걸려 눈같이 하얗게 된다.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당시 시대에는 문둥병이 하나님의 저주라고 믿었기 때문에, 성문 밖으로 쫓겨났다. 게하시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열왕기하 8:5.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문둥병자가 왕의 면전에서 왕에게 말을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하시의 문둥병이 치유되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5장과 8장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6-7장을 보자.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고 성중의 백성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백성들은 '오늘은 니 자식, 내일은 내 자식을 먹자'며 서로의 자식을 삶아 먹는 상황이 일어난다.
이런 소식을 들은 왕은 절망에 빠져 엘리사를 죽이려고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적은 예상하지 못한 데서 일어난다. 성밖에 있던 네 명의 '문둥병자'가 바로 주인공이다.
성내에 먹을 것이 없으니 문둥병자에게 갈 음식은 당연히 없고, 굶주림에 시달리던 그들은 아람 군대에게 간다.
살려주면 살고 죽이면 죽지... 하는 그들의 발걸음은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로 들리게 되고
아람 군대는 황혼에 일어나서 장막과 말, 나귀 등 진지를 통째로 버리고 도망친다.
이후 시간이 지나고...
(아람의 두 차례 침공과 수넴 여인에게 명한 칠 년이 지난 이후이니, 10년 정도의 세월이 지나지 않았을까?)
게하시는 왕의 명령으로 왕 앞에 나아가 엘리사의 행적을 낱낱이 고하게 된다.
쉬어가는 의미에서 뜬금없는 의문.
나아만의 문둥병이 치유된 요단 강과, 문둥병자들이 기적의 주인공이 된 사마리아 성의 거리는 수십km.
문둥병자가 돌 맞지 않고 걸어가기는 꽤나 먼 거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게하시의 문둥병은 어디서 치유된 것일까?
어찌됐든 게하시의 문둥병은 치유되었고, 그것은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음을 나타낸다.
이 점에서 자신의 죄를 탓하기만 하고 회개하지 못한 가룟유다가 생각이 났다.
교회에서 가끔씩 가룟유다의 삶이 어차피 정해져 있던 것이라면 너무 억울하지 않냐는 이야기들을 나눈다.
물론 게하시의 죄는 그에 비해 덜하지만, 당시 기준으로 신의 저주를 받은 건 적지 않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사마리아 성에서 게하시가 문둥병자였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사람들이 자식을 잡아먹고,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재물이 생존에 아무 소용이 없는 사태를 보고는
자신이 탐욕에 멀어 저지른 요단강가에서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게 되었을 것 같다.
가룟유다의 잘못은 그가 예수님을 팔아넘긴 것이 아니다.
이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며 가룟유다의 죄도 사해주셨을텐데
회개하지 않고 자책만 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게하시와 가룟 유다의 차이가 아닐까?
(왕을 섬기느라 다른 신에 몸을 굽혀야 하는 처지에 대해' 평안히 가라'는 답을 받고 돌아선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는 엘리사가 거절한 나아만의 선물이 아까워 나아만에게 거짓말을 하여 선물을 받아낸다.
엘리사는 그것을 알고 게하시에게 문둥병의 저주를 내리고, 게하시는 즉시 문둥병에 걸려 눈같이 하얗게 된다.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당시 시대에는 문둥병이 하나님의 저주라고 믿었기 때문에, 성문 밖으로 쫓겨났다. 게하시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열왕기하 8:5.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문둥병자가 왕의 면전에서 왕에게 말을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하시의 문둥병이 치유되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5장과 8장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6-7장을 보자.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고 성중의 백성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백성들은 '오늘은 니 자식, 내일은 내 자식을 먹자'며 서로의 자식을 삶아 먹는 상황이 일어난다.
이런 소식을 들은 왕은 절망에 빠져 엘리사를 죽이려고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적은 예상하지 못한 데서 일어난다. 성밖에 있던 네 명의 '문둥병자'가 바로 주인공이다.
성내에 먹을 것이 없으니 문둥병자에게 갈 음식은 당연히 없고, 굶주림에 시달리던 그들은 아람 군대에게 간다.
살려주면 살고 죽이면 죽지... 하는 그들의 발걸음은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로 들리게 되고
아람 군대는 황혼에 일어나서 장막과 말, 나귀 등 진지를 통째로 버리고 도망친다.
이후 시간이 지나고...
(아람의 두 차례 침공과 수넴 여인에게 명한 칠 년이 지난 이후이니, 10년 정도의 세월이 지나지 않았을까?)
게하시는 왕의 명령으로 왕 앞에 나아가 엘리사의 행적을 낱낱이 고하게 된다.
쉬어가는 의미에서 뜬금없는 의문.
나아만의 문둥병이 치유된 요단 강과, 문둥병자들이 기적의 주인공이 된 사마리아 성의 거리는 수십km.
문둥병자가 돌 맞지 않고 걸어가기는 꽤나 먼 거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게하시의 문둥병은 어디서 치유된 것일까?
어찌됐든 게하시의 문둥병은 치유되었고, 그것은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음을 나타낸다.
이 점에서 자신의 죄를 탓하기만 하고 회개하지 못한 가룟유다가 생각이 났다.
교회에서 가끔씩 가룟유다의 삶이 어차피 정해져 있던 것이라면 너무 억울하지 않냐는 이야기들을 나눈다.
물론 게하시의 죄는 그에 비해 덜하지만, 당시 기준으로 신의 저주를 받은 건 적지 않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사마리아 성에서 게하시가 문둥병자였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사람들이 자식을 잡아먹고,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재물이 생존에 아무 소용이 없는 사태를 보고는
자신이 탐욕에 멀어 저지른 요단강가에서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게 되었을 것 같다.
가룟유다의 잘못은 그가 예수님을 팔아넘긴 것이 아니다.
이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며 가룟유다의 죄도 사해주셨을텐데
회개하지 않고 자책만 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게하시와 가룟 유다의 차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