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지 히토나리의 소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싸안아 준 유명한 문구가 들어 있다.
자기 자신을 너무도 잘 아는 사람들이
너무나 절박하게 자신을 찾으려 할 때 건네곤 하는 한 마디다.
처음부터 끝까지 편지의 내용으로만 이루어진 독특한 소설.
인터넷이, 그리고 스마트폰이 이렇게도 발전한 이 시대에 편지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던 내게, 편지만이 가질 수 있는 무언가를 느끼고 깨닫게 해 준 책이다. 메일에도, 문자에도, SNS에도 찾아보기 힘든 것. 편지만이 갖고 있는 그 무언가는 '기다림'인 것 같다.
전송하면 1초 내로 상대에게 전해지는 메시지. 이제는 상대방이 내 메시지를 봤는지 아닌지도 바로 알 수 있다. 답장이 없는 화면 속 상대를 보며, '내가 잘못 보냈나?' '내가 뭘 잘못한 건 아닐까?'생각하며 보낸 메시지를 확인할 수도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상대의 응답을 기다린다.
편지는 보내는 데에도, 받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상대방이 내 메시지를 봤을지도 의문이고, 전해지는 과정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지도 짐작할 수 없다. 따로 복사해두지 않는 한, 내가 보낸 이야기를 다시 돌아볼 수도 없다. 상대가 답장을 할 지 아닐지도 의문이고, 전해지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기다림의 시간은 더 길다.
먼 지역에 사는 두 남녀가 펜팔을 맺는 편지로 시작하는 소설. 편지에는 편지만이 가질 수 있는 미묘함이 가득 담겨져 있다.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상대에 대한 감정적인 태도 대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며 편지를 쓴다. 보이지 않는 상대, 봤는지 알 수 없는 편지. 싸이 다이어리처럼 누군가가 읽었으면, 그치만 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 두 마음을 모두 담아, 마치 우주에 쏘아 올리는 듯 서로에게 편지를 전송한다. 그리고 그러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오랜 상처들을, 오랜 이야기들을 조금씩 치유하고 매듭짓는다.
책을 읽고 하루가 지났다. 여전히 이 책에 대한 느낌을 뭐라 써야 할 지,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런데 문득 3년 전쯤 읽었던 '포스트잇 라이프'라는 책이 생각났다. 함께하는 생활의 공간인 냉장고 문을 통해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편지와는 조금 다른 방식, 어쩌면 인스턴트 메시지와 더 가까운 방식으로 대화하는 이 소설이 왜 갑자기 생각났을까?
아마도 이 소설 역시 '기다림'이란 주제가 여운에 남아서인 것 같다. 포스트잇으로 이루어진 소설의 내용은 깊이 기억나지 않지만, 더 이상 읽어볼 사람도 답장을 해 줄 사람도 없지만, 습관처럼 붙어 있는 포스트잇에서 느껴진 그 무언가 때문인 것 같다. 다시 한 번 포스트잇 라이프를 읽어봐야겠다. 이 책에서 미처 정리하지 못한 생각들을 그 책을 통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편지로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오랫동안 떨어져서 볼 수 없는 사람들. '잘 지내?' 이 짧은 한 마디로 어떻게 내 맘을 다 전할 수 있을까?
보고싶었다, 미안해서 연락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조용히 있어주는 게 나을 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이상 내가 당신 주위에 없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맘들은 어떻게 전해야 할까? 어떻게 첫 마디를 시작해야 할까? 마치 수능을 마치고 사회에 처음 나왔던 때와 같은 고민들을 다시 하는 것 같다.
<짧은 느낌들>
뭔가 문제가 일어났다면 미덥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이번에는 내가 모토를 받쳐줄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되는 거잖아. 항상 도움을 받기만 했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모토를 있는 힘껏 도와줄 텐데.
도움을 주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도움을 받는 데에는 미숙한 나. 어쩌면 나를 도와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내가 맘을 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리리카. 별을 보러 떠나라!
별은 멀고 먼 거리를 열심히 건너와 네게 무언가를 전해주기 위해 반짝이고 있는 거니까.
리리카의 행복한 어린이집 이야기. 어린 시절 어린이집에서 지낸 추억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어린이집을 졸업한 뒤에도 몇 년이나 계속된 선생님의 진심이 가득 담긴 편지도 문득 생각난다. 다음 휴가 땐 그 편지들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인터넷이, 그리고 스마트폰이 이렇게도 발전한 이 시대에 편지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던 내게, 편지만이 가질 수 있는 무언가를 느끼고 깨닫게 해 준 책이다. 메일에도, 문자에도, SNS에도 찾아보기 힘든 것. 편지만이 갖고 있는 그 무언가는 '기다림'인 것 같다.
전송하면 1초 내로 상대에게 전해지는 메시지. 이제는 상대방이 내 메시지를 봤는지 아닌지도 바로 알 수 있다. 답장이 없는 화면 속 상대를 보며, '내가 잘못 보냈나?' '내가 뭘 잘못한 건 아닐까?'생각하며 보낸 메시지를 확인할 수도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상대의 응답을 기다린다.
편지는 보내는 데에도, 받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상대방이 내 메시지를 봤을지도 의문이고, 전해지는 과정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지도 짐작할 수 없다. 따로 복사해두지 않는 한, 내가 보낸 이야기를 다시 돌아볼 수도 없다. 상대가 답장을 할 지 아닐지도 의문이고, 전해지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기다림의 시간은 더 길다.
먼 지역에 사는 두 남녀가 펜팔을 맺는 편지로 시작하는 소설. 편지에는 편지만이 가질 수 있는 미묘함이 가득 담겨져 있다.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상대에 대한 감정적인 태도 대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며 편지를 쓴다. 보이지 않는 상대, 봤는지 알 수 없는 편지. 싸이 다이어리처럼 누군가가 읽었으면, 그치만 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 두 마음을 모두 담아, 마치 우주에 쏘아 올리는 듯 서로에게 편지를 전송한다. 그리고 그러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오랜 상처들을, 오랜 이야기들을 조금씩 치유하고 매듭짓는다.
책을 읽고 하루가 지났다. 여전히 이 책에 대한 느낌을 뭐라 써야 할 지,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런데 문득 3년 전쯤 읽었던 '포스트잇 라이프'라는 책이 생각났다. 함께하는 생활의 공간인 냉장고 문을 통해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편지와는 조금 다른 방식, 어쩌면 인스턴트 메시지와 더 가까운 방식으로 대화하는 이 소설이 왜 갑자기 생각났을까?
아마도 이 소설 역시 '기다림'이란 주제가 여운에 남아서인 것 같다. 포스트잇으로 이루어진 소설의 내용은 깊이 기억나지 않지만, 더 이상 읽어볼 사람도 답장을 해 줄 사람도 없지만, 습관처럼 붙어 있는 포스트잇에서 느껴진 그 무언가 때문인 것 같다. 다시 한 번 포스트잇 라이프를 읽어봐야겠다. 이 책에서 미처 정리하지 못한 생각들을 그 책을 통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편지로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오랫동안 떨어져서 볼 수 없는 사람들. '잘 지내?' 이 짧은 한 마디로 어떻게 내 맘을 다 전할 수 있을까?
보고싶었다, 미안해서 연락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조용히 있어주는 게 나을 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이상 내가 당신 주위에 없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맘들은 어떻게 전해야 할까? 어떻게 첫 마디를 시작해야 할까? 마치 수능을 마치고 사회에 처음 나왔던 때와 같은 고민들을 다시 하는 것 같다.
<짧은 느낌들>
뭔가 문제가 일어났다면 미덥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이번에는 내가 모토를 받쳐줄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되는 거잖아. 항상 도움을 받기만 했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모토를 있는 힘껏 도와줄 텐데.
도움을 주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도움을 받는 데에는 미숙한 나. 어쩌면 나를 도와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내가 맘을 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리리카. 별을 보러 떠나라!
별은 멀고 먼 거리를 열심히 건너와 네게 무언가를 전해주기 위해 반짝이고 있는 거니까.
리리카의 행복한 어린이집 이야기. 어린 시절 어린이집에서 지낸 추억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어린이집을 졸업한 뒤에도 몇 년이나 계속된 선생님의 진심이 가득 담긴 편지도 문득 생각난다. 다음 휴가 땐 그 편지들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